사회 사회일반

"주차장이라며 왜 안 올라와?"… 아내 카톡에 한숨 삼킨 지하 주차장의 아빠들 [어른의 오답노트]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일주일의 고단한 업무를 마치고 도착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
시동을 끄고도 섣불리 차 문을 열지 못한 채, 어두운 차 안에서 홀로 10여 분간 숨을 고르는 4050 남성들.
'김 부장'의 짐을 내려놓고 '아빠'라는 새 갑옷을 입기 전, 온전히 세상과 단절된 그들만의 외롭고도 눈물겨운 '동굴'에 대하여.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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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금요일 밤 10시. 치열했던 일주일의 생존 게임을 마치고 마침내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댄다.

엔진의 미세한 진동이 멈추고 라디오 소리마저 꺼진 칠흑 같은 차 안. 당장이라도 엘리베이터로 달려가 푹신한 소파에 몸을 던지고 싶을 법도 한데, 4050 중년 남성들은 약속이나 한 듯 섣불리 차 문을 열지 못한다.

운전대에 이마를 기댄 채 가만히 눈을 감고 있거나, 의미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위아래로 쓸어내리며 시간을 보낸다.

누군가 밖에서 똑똑 창문을 두드리기 전까지, 이 좁고 어두운 차 안은 대한민국 4050 가장들이 세상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완벽하게 단절될 수 있는 유일한 '동굴'이 된다.

◇ 집에 가기 싫어서가 아니다,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할 뿐

아내들은 종종 묻는다. "주차장 도착했다면서 왜 이렇게 늦게 올라와? 집에 오기 싫어?" 결단코 아니다. 가족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짊어져야 할 또 다른 역할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것뿐이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위로는 임원들의 압박을 견디고, 아래로는 후배들의 눈치를 보며 '김 부장'이라는 무거운 갑옷을 입고 버텼다. 하지만 현관문 도어록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 갑옷을 벗을 새도 없이 아이들과 놀아주고 집안일을 거들어야 하는 '다정한 아빠'이자 '듬직한 남편'이라는 새로운 갑옷을 서둘러 덧입어야 한다.

두 개의 무거운 역할 사이, 그 어디에도 온전한 '나'는 없다. 주차장 차 안에서의 고요한 10분은 두 갑옷을 갈아입기 전, 방전된 멘탈을 간신히 충전하는 처절한 의식과도 같다.

◇ 온전히 내가 되는 우주에서 가장 좁은 안식처

공간이 주는 묘한 안도감도 한몫한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1평 남짓한 운전석. 이 공간에서만큼은 누군가의 결재를 기다릴 필요도, 애써 억지웃음을 지을 필요도 없다.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헤치고 오늘 하루 켜켜이 쌓였던 억울함과 피로를 긴 한숨으로 토해내도, 나를 평가하거나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깜빡이는 블랙박스 불빛만이 지친 가장의 묵언 수행을 고요히 지켜줄 뿐이다.

◇ 현관문을 여는 당신의 뒷모습은 언제나 훌륭하다

금요일 밤, 혹시 지금도 주차장 차 안에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가. 빨리 올라가야 한다는 죄책감에 쫓길 필요는 없다.

남몰래 삼켜낸 당신의 그 고독한 10분 덕분에, 오늘 밤 당신의 가정은 찌푸림 없는 환한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로 채워질 수 있을 테니까.

이제 깊은숨을 한 번 내쉬고 차 문을 열자. 좁고 어두운 동굴을 나와 현관문 도어록을 씩씩하게 누르는 당신. 가족을 위해 기꺼이 두 번째 갑옷을 입고 미소 짓는 그 넓은 등은, 이번 주도 세상 그 어떤 영웅보다 훌륭하고 위대했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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