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에너지자원공사 울산 유치는 지정학적 이점... 울산항만공사 통합은 딜레마

최수상 기자
파이낸셜뉴스

김상욱 울산시장 "에너지자원공사 위치 정치적 셈법으로 풀어선 안 돼"
울산항만공사 독립권 내주고 에너지자원공사 유치는 딜레마
패러다임 전환과 대규모 투자 적기 놓치면 울산 에너지허브 좌초
유치 실패와 항만공사 통합 시 최악의 결과.. 대처 방안 시급

국내 최대의 액체 물류 항만인 울산항은 대한민국 에너지 안보를 지탱하는 대체 불가능한 요충지로 평가되고 있으며 현재 글로벌 친환경에너지허브로 발돋움하고 있다. 울산신항 북방파제 환적부두에서 석유제품 선박을 대상으로 한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이 진행되고 있다. 울산항만공사 제공
국내 최대의 액체 물류 항만인 울산항은 대한민국 에너지 안보를 지탱하는 대체 불가능한 요충지로 평가되고 있으며 현재 글로벌 친환경에너지허브로 발돋움하고 있다. 울산신항 북방파제 환적부두에서 석유제품 선박을 대상으로 한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이 진행되고 있다. 울산항만공사 제공

【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울산이 대한민국 산업 수도를 넘어 글로벌 친환경 에너지 허브를 목표로 삼고 있지만 그 동력이 자칫 흔들릴 수 있는 기로에 놓였다.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합병으로 탄생할 거대 에너지 공기업 가칭 '에너지자원공사'의 본사 유치를 두고 대구시와의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에너지허브의 기반이자 울산 경제의 대동맥인 울산항을 관리 운영하는 울산항만공사가 중앙집중식 단일 조직으로 강제 흡수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김상욱 울산시장이 에너지자원공사 유치라는 실리를 얻기 위해 정부의 4대 항만공사 통합안을 지지하는 배수의 진을 친 상황에서 지역 여야 정치권과 항만 업계는 오히려 궁극적 목표인 에너지허브의 좌초가 우려된다며 울산의 생존을 건 고도의 정무적 해법을 요구하고 있다.

■ 내륙 도시 대구 vs 해상 관문 울산

현재 에너지자원공사의 본사 입지를 둘러싼 울산시와 대구시의 논리는 정량적 지표와 정성적 가치의 정면충돌이다. 대구시 측은 가스공사의 압도적인 체급과 우량한 재무 구조를 앞세워 가스공사 중심의 흡수 통합을 당연시하고 있다. 반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울산의 한국석유공사는 체급면에서 열세에 놓여 있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공공기관 통폐합이 단순한 재무적 수치나 지역 안배가 아닌, 철저히 산업적 효율성에 기반해야 한다며 울산시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울산은 석유공사 본사를 비롯해 S-Oil, SK에너지 등 정유·석유화학 대기업과 친환경 에너지 연구기관이 집적된 독보적인 실물 산업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바다가 없는 내륙 도시 대구에 국가 에너지 컨트롤타워를 두는 것은 자원의 도입, 비축, 가공이 이루어지는 산업 현장과의 치명적인 단절을 초래해 국가 에너지 안보 대응력을 떨어뜨리는 비효율적 선택이 될 뿐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김상욱 울산시장은 집적화를 통한 공공기관의 기능강화와 철저한 산업적 실리주의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며, 이번 유치 경쟁이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셈법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과거 공공기관 1차 이전 사례처럼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명분 하에 진행되는 '나눠먹기식 기계적 배치'나, 단순 인구수 및 유권자 수의 논리가 작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정치적 외압으로 대구행이 결정된다면 이는 국가 에너지 산업 전반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다.

■ 울산항의 지정학적 위상, '대체 불가능한 요충지'

국내 최대의 액체 물류 항만인 울산항은 대한민국 에너지 안보를 지탱하는 대체 불가능한 요충지로 평가된다. 울산항은 막대한 원유 수입과 정유제품 수출을 도맡아 처리할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로 초대형 선박에 바이오메탄올 벙커링을 성공시키는 등 글로벌 친환경 선박 연료 공급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나아가 기후변화로 열린 북극항로 시대에 국내 항만 중 가장 많은 운항 선박 기항 실적을 보유하며 북극권 에너지 자원 수입의 전초기지로 자리매김했다.

지정학적 관점에서도 울산항의 위상은 남다르다. 울산연구원 관계자는 "세계 최대 에너지 허브인 싱가포르 해상 항로와 유사하게 동북아시아 중심 해상 항로에 위치해 위기 상황 시 신속한 자원 도입과 환적 트레이딩이 현장에서 즉각 이뤄질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지녔다"라며 "중동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위기 등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상시화된 요즘 실물 비축기지와 항만 물류 거점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울산이야말로 대한민국 에너지 주권을 지킬 최적의 위치"라고 말했다.

■ 항만 직접 컨트롤 불가, 흔들리는 동북아 에너지허브의 꿈

문제는 정부의 구상대로 획일적인 항만 통합이 단행될 경우, 울산시가 십여년 넘게 사활을 걸고 추진해 온 '동북아 에너지허브 구축 사업'에 먹구름이 드리우게 된다는 점이다. 울산항은 전체 물동량의 약 80%가 액체화물인 세계적인 특화 항만으로, 배후의 석유화학 및 자동차 국가산업단지와 끈끈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가칭 '한국항만공사'로 통합되어 중앙집중식 지배구조로 재편된다면 거대 조직의 일률적인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 울산항만의 독보적인 특수성과 현장성은 희석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울산시는 에너지자원공사라는 거대 컨트롤타워를 유치하더라도, 정작 그 에너지가 드나드는 핵심 관문인 울산항을 직접 컨트롤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구조에 직면하게 된다. 머리(에너지자원공사 본사)는 울산에 올지언정, 손발이 되어줄 항만 물류의 지휘권이 중앙 본사로 넘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려보면 이 같은 지배구조는 심각한 모순을 드러낸다. 항만 업계 한 관계자는 "싱가포르, 네덜란드 로테르담, 미국 휴스턴 등 세계적인 에너지·물류 허브는 중앙집중식 항만 컨트롤타워와 거리가 멀다"라며 "오히려 이들은 지방정부 중심의 항만당국(PA)이 강력한 자율성을 바탕으로 판을 짜고, 그 안에서 민간 기업들이 자유롭게 거래한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울산항이 지역 지사로 격하된 뒤 중앙 본사의 기계적인 결정을 기다리다 보면 급변하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맞춘 신속한 패러다임 전환과 대규모 인프라 투자의 적기를 놓치게 되고, 결국 거대 지휘부 유치의 효과는 고사하고 동북아 에너지허브 추진 사업 자체가 전면 좌초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 울산 여야 정치권, 노동계 "항만공사 통합은 개악"

이에 따라 울산시의회와 항만 노동계는 정부의 획일적인 항만 통합안을 '지역 분권형 항만운영체계(PA)'를 역행하는 중앙집중식 개악으로 규정하며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울산시의회는 최근 여야 의원 전원이 참여한 통합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울산항이 전국 상업용 액체 저장능력의 25%가 집중된 특화항만이며 위험물 하역업체 34개사가 밀집해 있어 고도의 전문적인 안전관리와 현장의 신속한 비상대응 체계가 필수적인데, 이를 거대 중앙 조직의 지사로 축소하면 현장 대응력이 마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항만공사 노조 역시 구체적인 과거 연구 결과를 들어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노조 측은 "지난 2011년 국토해양부 연구에서 이미 4개 항만공사 통합의 연간 절감 효과는 50억원에 불과해 미미하며, 오히려 각 항만의 효율성을 하향 평준화한다는 결론이 났다"고 밝혔다. 이들은 충분한 검토 없는 통합으로 경쟁력을 상실해 세계 4위에서 85위로 추락한 일본 고베항의 비극이 울산항에서 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울산시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에너지자원공사 유치 실패와 울산항만공사의 지사 격하라는 설상가상의 상황이다.

울산시가 울산항만공사를 내어주면서라도 에너지자원공사를 유치하겠다는 벼랑 끝 전술을 펼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대구의 탄탄한 경제 논리, 인구수로 밀어붙이는 정치적 압박과 정부의 완고한 항만 통합의지가 더해지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정무적 대책도 필요해 보인다.

[email protected] 최수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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