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잠정합의안 '일단 부결'…HD현대중공업 경쟁력 '경고등'
역대 최고 보상에도 또 부결…HD현대중공업 '부결의 관성' 논란
2016년 이후 11년 연속 노사 재교섭 악순환
단기 추가 보상 넘어 미래 경쟁력 함께 보는 교섭 문화 필요
【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HD현대중공업 노사가 함께 도출한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가 11년째 1차 부결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노조 집행부에 대한 협상력 부족을 지적하는 조합원들의 불만이 원인이겠지만 반복되는 부결이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HD현대중공업의 경쟁력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노사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한 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조합원 찬반투표가 지난 2일 실시됐다. 결과는 부결이었다. 투표자 7541명 가운데 3932명(52.14%)이 반대표를 던졌다. 찬성은 3588명(47.58%)으로 격차는 344표였다.
노사가 14시간에 걸친 마라톤 교섭 끝에 지난 9월 30일 마련한 잠정합의안에는 기본급 12만원 인상과 일시금 1100만원+200%, 성과급 지급 등이 담겼다. 1인당 평균 보상 효과는 4056만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올해 임금협상을 마무리한 삼성중공업이 기본급 13만 1786원 인상과 격려금 700만원, 영업이익의 10%를 재원으로 한 성과급 지급에 합의한 것과 비교하면 HD현대중공업 잠정합의안은 기본급 인상 폭은 다소 낮지만, 일시금 등을 포함한 전체 보상 규모는 더 높은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보상 규모만으로는 잠정합의안의 부결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부결의 관성'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사측도 이를 견지하고 있다. 2016년 이후 올해까지 첫 잠정합의안이 11년 연속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됐다. 교섭이 2개 연도에 걸쳐 진행된 사례를 포함해 매번 첫 합의안이 부결되면서 재교섭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반복됐다는 점을 주지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찬반투표 결과를 보면 2023년 첫 잠정합의안은 반대 68.78%로 부결됐지만 2차 잠정합의안은 찬성 58.52%로 가결됐다. 2024년에도 찬성률이 1차 40.33%에서 2차 59.17%로, 2025년에는 1차 36.23%에서 2차 59.56%로 큰 폭으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후 재교섭을 거치면서 기본급과 격려금 등 보상 조건이 소폭 상향됐다. 즉, '일단 부결'이 좀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신호를 주었고 이는 11년 동안 학습 효과로 나타났다. '1차안은 일단 부결이다'라는 인식이 노조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노조원들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지역 노동계 한 관계자는 "재교섭에서 얻는 게 더 나아지다보니 조합원들 사이에 무조건 1차안은 부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을 수도 있겠지만 1차안 부결 이후 협상력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집행부가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라며 "집행부에 대한 불신도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첫 잠정합의안 부결이 반복될수록 노사 모두가 부담해야 할 협상 비용 역시 커진다는 점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최종 수준에 가까운 제시안을 내놓을 이유가 줄어들 것이고, 노조집행부 또한 높아진 조합원 기대치로 인해 잠정합의안 도출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사측으로서는 이 문제가 단순한 노사협상을 넘어 회사의 장기 경쟁력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국내 조선업은 중국 업체들의 거센 추격 속에서 친환경 선박과 스마트 조선소 등 미래 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호황기에 확보한 수익을 미래 경쟁력 강화에 얼마나 재투자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매년 인건비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교섭 장기화와 파업까지 반복될 경우 생산성과 원가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조선업은 경기 변동성이 큰 산업인 만큼 호황기에 늘어난 고정비는 향후 업황이 꺾였을 때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게 사측의 우려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상황에서 노사 교섭 역시 단기적인 추가 보상을 넘어 생산성과 미래 경쟁력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라며 "첫 잠정합의안은 무조건 부결이라는 인식보다는 합의안의 내용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교섭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최수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