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빨간 날이 두렵다"…달력 빈칸을 돈으로 메우는 맞벌이 부부의 '돌봄 파산' [얼마면 돼]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학교는 쉬고 부모는 출근하는 '제도적 엇박자' 속에서, 수십만 원의 사비로 돌봄 공백을 땜질해야 하는 맞벌이 부부의 잔혹한 '가짜 소득' 현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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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추석 명절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10월 4일 일요일 아침. 40대 직장인 K씨 부부의 거실에는 적막을 깨는 깊은 한숨이 울려 퍼졌다. 식탁 위에 놓인 달력의 10월 첫째 주는 온통 붉은색과 검은색이 기형적으로 섞여 있다.

3일 개천절(토)부터 시작해 5일 대체공휴일, 그리고 9일 한글날(금)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황금 징검다리 연휴' 구간이다.

문제는 7살, 9살 남매가 다니는 초등학교와 유치원이 6일부터 8일까지 3일간을 통째로 '재량휴업일'로 지정했다는 점이다. 학교는 주말을 포함해 무려 9일을 내리 쉬지만, 중소기업에 다니는 K씨 부부는 당장 6일 화요일부터 정상 출근을 해야 한다.

명절 비용으로 이미 마이너스 통장을 파놓은 상황에서, 당장 내일모레부터 아이들을 어디에 맡겨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진 것이다.

◇ 하루 15만 원 '긴급 돌봄'… 방학보다 무서운 징검다리 휴일

맞벌이 부부에게 징검다리 연휴에 불쑥 찾아오는 학교의 '재량휴업일'은 축복이 아니라 재난에 가깝다.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종사자가 아닌 이상, 당장 평일 3일의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부모는 또다시 자본주의적 땜질을 시작해야 한다.

명절에 고생하신 양가 부모님께 또다시 아이를 부탁하는 것은 불효를 넘어선 염치없는 짓이다. 결국 민간 아이돌봄(시터) 매칭 플랫폼을 켜지만, 연휴 기간 '긴급 돌봄' 시급은 1만 3000원에서 1만 5000원을 훌쩍 넘긴다. 하루 9시간씩 3일을 맡기면 순수 시터 비용만 약 40만 원이다. 여기에 아이들 식비와 간식비까지 더하면 50만 원이 우습게 깨진다.

비용이 부담스러워 지역 맘카페를 뒤져보지만, 해결책은 영어 학원이나 태권도장에서 임시로 운영하는 '단기 방학 특강'에 아이를 아침부터 오후까지 밀어 넣는 이른바 '학원 뺑뺑이'뿐이다. 결국 아이의 휴식은 사라지고 부모의 통장 잔고만 털리는 최악의 가성비가 10월 첫째 주에 펼쳐진다.

◇ 초등 수업일 190일 vs 근로일 250일… 통계가 증명하는 '60일의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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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묘한 '돌봄 파산'은 단순히 K씨 부부가 직장을 잘못 골랐거나 운이 나빠서 겪는 개별적인 불행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교육과 노동 제도가 낳은 철저한 구조적 맹점이다.

교육부 규정에 따른 우리나라 초등학교의 연간 법정 수업일수는 190일 이상이다. 반면, 주 5일제 직장인의 연간 평균 근로일수는 공휴일을 제외하고 약 250일 안팎에 달한다. 부모가 꼬박 출근해야 하는 날과 아이가 학교에 가는 날 사이에 무려 '60일'이라는 거대한 구조적 시차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 이 공백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봄방학이나 10월 재량휴업일처럼 예고 없이 튀어나오는 징검다리 공백은 맞벌이 부부의 연차만으로는 도저히 방어할 수 없는 치명적인 틈새다. 국가 제도가 만들어낸 이 60일의 시차를, 대한민국 3040 부모들은 오직 자신들의 '사비(자본)'와 '친정엄마의 무릎 연골'을 갈아 넣어 억지로 메우고 있는 셈이다.

◇ "이럴 거면 외벌이가 낫지"… 제도적 엇박자가 만든 '가짜 소득'

학계와 전문가들은 돌봄 공백의 근본적 원인이 노동 시장과 교육 시장의 엇박자에 있다고 진단한다.

여성학 및 아동복지 전문가들은 각종 정책 포럼을 통해 "돌봄의 1차적 책임이 여전히 가정에 떠넘겨진 상태에서, 학교 중심의 달력과 기업 중심의 달력이 전혀 맞물려 돌아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일관되게 지적해 왔다.

국가가 책임진다는 늘봄학교나 공적 돌봄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지만, 당장 징검다리 휴일에 셔터를 내리는 굳건한 학교 앞에서 맞벌이 부모가 기댈 곳은 결국 50만 원짜리 '자본의 힘'뿐이다.

"추석에 양가 용돈 하느라 150만 원 썼는데, 애들 쉰다고 며칠 만에 또 50만 원이 나가네. 여보, 나 진짜 회사 그만둘까? 내가 버는 돈, 전부 시터 이모님이랑 학원 원장님 통장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아."

거실 소파에 앉아 긴급 돌봄 시터 이력서를 훑어보던 K씨 아내의 자조 섞인 한탄이다. 둘이 합쳐 월 800만 원을 번다며 안도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학교의 휴일 앞에서 부부의 합산 소득은 또다시 남는 것 없는 '가짜 소득'으로 전락하고 만다.

아이와 함께 쉬지 못해 미안하고, 출근하기 위해 돈을 써야 해서 억울한 3040 맞벌이 부모들. 이들에게 2026년 10월의 징검다리 황금연휴는 달력에 새겨진 그 어떤 붉은 글씨보다 잔인한 '돌봄 파산'의 계절로 다가오고 있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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