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전 5m 불법주차, 화재 땐 급수 차질… 제주 22일 전역 단속
소방·행정·의용소방대 합동 투입
승용차 8만원·승합차 9만원 과태료
제천 참사 뒤 방해차량 강제처분 강화
법 있어도 현장 강제처분은 드물어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화재 현장에서 소화전은 소방차에 물을 계속 공급하는 핵심 급수시설이다. 바로 앞을 차량이 막으면 소방차 접근과 호스 연결이 늦어져 초기 진압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 제주 전역에서 소화전 주변 불법 주정차 일제단속이 실시된다.
4일 제주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오는 22일 도내 전 지역에서 소화전 주변 5m 이내 불법 주정차 차량을 동시에 단속한다.
소방공무원과 행정시 단속공무원, 의용소방대원이 합동단속반을 꾸려 현장에 투입된다. 현장단속과 안전신문고 앱을 이용한 주민신고제도 함께 운영한다. 소화전 주변 주정차가 일반 불법주차보다 위험한 이유는 화재 진압에 필요한 물 공급을 직접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재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차는 자체 물탱크에 실은 물을 사용하지만 화재가 커지거나 진압시간이 길어지면 추가 급수가 필요하다. 이때 도로와 주택가 등에 설치된 소화전에 호스를 연결해 물을 공급받는다.
소화전 앞에 차량이 세워져 있으면 소방차가 적정 위치에 접근하기 어렵고 소방대원이 호스를 연결하거나 밸브를 조작할 공간도 줄어든다. 차량을 이동시키거나 우회해 급수해야 한다면 그만큼 본격적인 방수작업이 늦어질 수 있다.
그래서 소화전 주변은 '잠깐 정차'도 허용되지 않는 주정차 금지구역이다. 도로교통법에 따라 소화전 등 소방용수시설 주변 5m 이내에는 차량을 세울 수 없다. 안전표지가 설치된 구역에서 이를 위반하면 승용차 8만원, 승합차 9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일반적인 불법 주정차보다 과태료가 높은 것도 교통질서보다 화재 대응과 직결된 안전구역이라는 점을 반영한 조치다.
불법 주정차가 실제 소방활동을 막은 대표적 사례로는 2017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가 꼽힌다.
당시 화재로 29명이 숨졌고 건물 주변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굴절사다리차 등 소방차량 진입이 지연됐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제천 화재는 소화전을 차량이 직접 가로막은 사고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불법 주정차 한 대가 긴급 소방활동의 시간을 빼앗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이후 긴급 소방활동을 방해하는 차량에 대한 법적 대응도 강화됐다. 2018년 소방기본법이 개정되면서 소방본부장이나 소방서장, 소방대장은 긴급 출동과 소방활동을 방해하는 주정차 차량이나 물건을 제거하거나 이동시킬 수 있는 근거가 명확해졌다.
그러나 법적 권한과 실제 현장 집행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24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관련 법 개정 이후 5년간 화재 진압 과정에서 불법 주정차 차량을 강제처분한 사례는 전국에서 4건에 그쳤다.
화재 현장에서 차량을 밀거나 파손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민원과 분쟁 등에 대한 부담 때문에 법에 명시된 강제처분이 실제 현장에서는 적극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결국 화재가 발생한 뒤 차량을 강제로 옮기는 것보다 소화전 주변 5m를 평소 비워두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응이라는 의미다.
제주에서도 주택가와 상가 밀집지역의 주차난이 심한 곳에서는 소화전 주변까지 차량이 차지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도로변에 적색 노면표시와 주정차 금지 안내가 돼 있어도 소화전 바로 옆에 차량을 세우는 경우가 있어 소방당국은 단속과 홍보를 반복하고 있다.
이번 일제단속도 과태료 부과 자체보다 화재 발생 때 소방용수를 즉시 확보할 공간을 사전에 지키는 데 목적이 있다. 제주소방안전본부는 22일 단속 이후에도 소화전 주변 불법 주정차에 대한 단속과 홍보를 이어갈 방침이다.
박진수 제주소방안전본부장은 "소화전 주변 불법 주정차는 교통 위반에 그치지 않고 도민의 생명과 재산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소화전 주변 5m 이내에는 반드시 주정차를 삼가고 안전한 소방활동 환경 조성에 협조해 달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정용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