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밥상에서 시작되는 상속 분쟁[알쏭달쏭 상속]
[파이낸셜뉴스] 추석 연휴가 끝나면 변호사 사무실의 전화가 바빠진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 사이에서 묵혀 두었던 이야기가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흔히 명절 직후에는 이혼 상담이 늘어난다고들 한다. 그런데 필자가 체감하기로는 상속 관련 상담도 그에 못지않게 늘어난다. "아버지가 큰형에게만 아파트를 넘겨주셨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어머니 통장을 막내가 관리하고 있는데 잔고가 이상합니다." 송편을 빚던 손으로 상속 서류를 들고 찾아오는 형제들을 보면 마음이 무겁다.
필자는 법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가사·상속 사건을 오랫동안 담당했고, 수원가정법원에서는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수많은 상속재산분할 사건을 심리했다. 그 경험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상속 분쟁의 씨앗은 대부분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이미 뿌려져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명절을 보낸 가족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이야기를 적어 본다.
상속재산분할 사건을 진행하면서 법대에 앉아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다투는 대상은 분명 재산이 맞다. 그러나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그 밑에 깔린 진짜 이야기가 들린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형만 챙기셨다", "아버지 병간호는 내가 다 했는데 재산은 똑같이 나누자고 한다", "결혼할 때 누나는 집을 받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수십 년 동안 쌓인 서운함이 부모님의 부재와 함께 한꺼번에 법정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상속재산분할 사건은 판사에게도 쉽지 않은 사건이다. 법률적 쟁점만 놓고 보면 비교적 단순해 보이는 사건도 당사자들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며 치열하게 다툰다.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님이 누구를 더 사랑했는가'를 확인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그 마음까지 판단해 줄 수는 없다. 법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재산을 나누는 것뿐이다.
실무에서 가장 첨예하게 다투어지는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특별수익'이고 다른 하나는 '기여분'이다.
특별수익은 공동상속인 중 누군가가 부모님 생전에 증여를 받았다면 그만큼의 상속분을 미리 받은 것으로 보아 계산에 반영하는 제도다. 문제는 무엇이 특별수익에 해당하는지를 입증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점이다. 수십 년 전 결혼 자금으로 건네진 돈, 사업 자금 명목으로 오간 돈, 부모님 명의 계좌에서 조금씩 빠져나간 돈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거나 당사자의 기억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금융거래정보 제출명령 등을 통해 오래된 거래내역을 하나하나 추적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형제들 사이의 불신은 더욱 깊어진다.
기여분은 부모님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재산의 유지·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상속인에게 그 몫을 더 인정해 주는 제도다. 그런데 법원은 기여분을 생각보다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족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함께 살며 병간호를 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통상의 부양 수준을 넘어서는 '특별한' 기여였음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법정에서 "제가 10년 동안 어머니를 모셨습니다"라고 호소하던 상속인이 기여분을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허탈해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그렇다면 분쟁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재산에 관한 뜻을 분명히 남기시도록 돕는 것이다.
첫째, 유언을 남기는 것이다. 다만 유언은 법이 정한 방식을 엄격하게 지켜야 효력이 있다. 가장 흔히 쓰이는 자필증서 유언은 유언자가 전문(全文)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직접 쓰고 날인해야 한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유언 전체가 무효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연월일 중 '일'이 빠졌다거나 주소 기재가 불완전하다는 이유로 부모님의 뜻이 담긴 유언장이 효력을 잃는 경우를 법정에서 여러 차례 보았다. 가능하다면 공정증서 유언을 활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둘째, 생전 증여가 있었다면 그 경위와 취지를 기록으로 남겨 두는 것이다. 특정 자녀에게 결혼 자금이나 주택 자금을 지원했다면, 그것이 상속분을 미리 준 것인지, 아니면 그와 별개의 지원인지 부모님이 직접 밝혀 두는 것만으로도 훗날의 다툼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셋째, 부양과 간병의 기록을 남겨 두는 것이다. 부모님을 모시는 자녀라면 병원 동행 기록, 간병비 지출 내역, 부모님을 위해 부담한 생활비 내역 등을 평소에 정리해 두는 것이 좋다. 기여분을 주장할 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감정적인 호소가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다.
넷째, 유류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부모님이 특정 자녀에게 재산을 몰아주는 유언을 하더라도 다른 자녀들은 법이 보장하는 최소한의 몫, 즉 유류분을 청구할 수 있다. 유류분을 고려하지 않은 재산 설계는 오히려 더 큰 분쟁을 부를 수 있다.
상속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쉽지 않다. 부모님 앞에서 재산 이야기를 꺼내면 불효처럼 느껴지고, 형제들 사이에서는 욕심쟁이로 비칠까 조심스럽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족은 그 이야기를 미룬다.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법정에서 처음으로 서로의 속마음을 얘기하고 듣게 된다.
필자가 판사로 근무할 때 조정이 원만하게 성립된 상속재산분할 사건들을 돌아보면 공통점이 있었다. 부모님이 생전에 자녀들에게 당신의 뜻을 여러 번 이야기해 두셨다는 점이다. 자녀들은 그 뜻에 전부 동의하지는 않았어도 적어도 부모님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 차이가 법정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었다.
명절은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몇 안 되는 기회다. 올해 추석 밥상에서 미처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차분히 나눠 보기를 권한다. 상속은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메시지다. 그 메시지가 분쟁의 불씨가 아니라 가족을 이어 주는 끈이 되려면,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김태형 변호사는 가사∙상속 분야 전문가이다. 2007년 법관 임용 후 2024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7년간의 법관 생활을 끝내고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김태형 변호사는 법관 시절 2012년부터 총 8년간 가사∙상속 및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법관 퇴직 전 5년(2019~2024)간 수원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수많은 가사∙상속 관련 케이스를 처리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베스트셀러인 "부장판사가 알려주는 상속, 이혼, 소년심판 그리고 법원"(박영사, 2023)의 저자이기도 하다.
[email protected] 김영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