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반도체 호황기, 불황 대비할 때
최근 반도체 업황 회복과 함께 영업이익을 성과급으로 나누자는 논쟁이 주목받고 있다. 호황기의 성과를 근로자에게 정당하게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산업정책 관점에서는 이와 별도로 질문을 한 단계 넓힐 필요가 있다. 그 성과가 협력기업과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포함한 산업생태계의 역량으로 전환되는지, 다음 불황을 견딜 준비로 이어지는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경기순환성이 큰 산업에서는 호황의 이익이 선도기업에 집중되는 반면, 불황의 충격은 발주 축소와 투자 지연, 금융 위축을 통해 공급망 전체로 확산된다. 자금조달 여력이 낮은 중소·중견기업은 일시적 매출 감소에도 연구개발을 중단하고 핵심 인력을 줄이거나 설비를 매각한다. 사라진 기술과 숙련, 인증과 생산역량은 다음 호황이 와도 단기간에 복구하기 어렵다. 호황기 과실은 현재에 배분되지만 불황기 비용은 산업 전체와 정부가 뒤늦게 부담하는 셈이다.
산업정책은 개별기업 지원을 넘어 공급망과 산업생태계의 경쟁력·회복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중 경쟁과 공급망 재편, 인공지능과 탄소중립 전환 속에서 전략산업 경쟁력은 한 기업의 투자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요기업과 협력기업, 금융과 인력, 기술과 인프라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공급망 유지의 편익은 고용과 지역경제, 경제안보로 확산되지만 그 비용은 특정 기업에 집중된다. 불황에는 금융기관도 위험회피적으로 변해 경쟁력 있는 기업까지 자금난에 빠진다. 이는 개별 계약과 기업 대응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산업 차원의 공통위험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기업의 이익을 강제로 환수하거나 불황 때마다 재정을 투입하는 방식이 답은 아니다. 필요한 것은 민간의 책임과 정부의 조정·인센티브를 결합한 경기대응형 산업정책이다. 경기순환성이 크고 공급망 연계가 강한 산업에서는 참여기업이 호황기에 자율적으로 공동재원을 조성하고, 정부는 세제와 정책금융으로 참여를 안정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 이 재원은 불황기에는 경쟁력 있는 중소·중견기업의 유동성과 연구개발, 핵심 인력 유지에 활용하고, 평시에는 공동 연구개발과 생산성 향상, 공급망·고객 다변화에 투자할 수 있다.
물론 해당 제도가 강제적 이익환수나 부실기업 연명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민간이 먼저 위험을 부담하고 정부 지원은 조건부·추가적으로 제공돼야 한다. 근로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협력기업의 적정 납품대금을 대체해서도 안 된다. 일시적 유동성 위기와 구조적 경쟁력 저하를 구분하고, 지원 이후에는 상환과 성과평가가 뒤따라야 한다.
좋은 산업정책은 위기가 닥친 뒤 특정 기업을 구제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호황기에 다음 불황을 견딜 기업과 기술, 사람과 공급망을 함께 준비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제 호황기의 성과를 누가 얼마나 나눌 것인가를 넘어 산업의 성과를 어떻게 지속가능한 역량으로 전환할 것인지로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
■약력 △애리조나주립대 경제학 박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현) △OECD 산업혁신기업가정신위원회 부의장(현) △미네아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연구원(전)
조재한 산업연구원 산업미래정책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