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특별법 다시 국회로… '소요사태' 삭제·희생자 범위 확대 쟁점
제주도·도의회·교육청 등 공동주최
정명·재심 확대·왜곡 처벌 논의
2028년 80주년 전 개정 요구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국가보상과 직권재심으로 제주4·3 희생자의 명예회복 절차가 진행 중인 가운데 법률에 남은 '소요사태' 표현을 손질하고 희생자 인정 범위와 재심 대상을 확대하는 후속 입법 논의가 다시 국회 무대에 올랐다.
6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는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위한 제4차 공동토론회'가 열렸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김한규·문대림·김성범·정춘생 국회의원, 제주4·3기관·단체 연석회의가 공동 주최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범국민위원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공동 주관했다. 변영근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과 제주지역 국회의원,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을 비롯한 유족과 4·3단체 관계자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쟁점의 출발점은 현행 특별법 제2조다. 법은 제주4·3사건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2000년 특별법 제정 이후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채택과 대통령의 공식 사과, 국가보상, 직권재심까지 제도가 진전됐지만 '소요사태'라는 표현은 그대로 남았다. 이번 논의에서는 이 표현을 삭제하고 4·3의 역사적 성격을 법률상 정의에 어떻게 담을지가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정명'은 제주4·3을 역사적 성격에 맞게 어떤 이름으로 부를지를 정하는 작업이다. 이재승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주4·3사건'을 '제주4·3항쟁'으로 바꾸는 방안을 제안했다. 다만 정명에는 역사·사회·법률적 평가와 유족·도민사회의 공감대가 필요하다.
이 교수는 특별법 개정 쟁점을 △4·3 정명과 정의 △피해 범주 확대 △희생자 배제 △재심 △왜곡·비방 처벌 △가해자 상훈 박탈 △의료·복지 △유족회 지원 △유족 의료정보 등 9개 영역으로 정리했다.
양성주 제주4·3희생자유족회 상임부회장도 현행 '소요사태' 표현을 삭제하고 2003년 정부가 채택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을 법률의 정의 조항에 반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전문가 몇 명이 명칭을 결정하기보다 유족과 도민사회가 충분한 숙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희생자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도 쟁점이다. 현행법은 사망자와 행방불명인, 후유장애인, 수형인을 희생자로 규정한다. 당시 경찰서나 마을 공회당 등에 강제로 구금돼 고문과 폭행을 당했지만 수형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피해자는 현행 분류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보상과 재심이 상당 부분 진행된 만큼 남은 사각지대가 더 뚜렷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제주도에 따르면 지난 8월 31일 기준 4·3 희생자 1만5286명과 유족 12만8295명이 심사·의결됐으며 희생자 9563명에 대한 보상금 지급이 완료됐다.
군사재판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도 이어지고 있다. 군사재판 회부자 2530명 가운데 직권재심으로 1749명, 개별 청구를 통해 457명 등 2206명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일반재판 피해자도 직권재심 542명과 개별 재심 93명 등 635명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남은 문제 가운데 하나는 특별재심 조항에 있는 '희생자로서'라는 문구다. 군사재판 피해자라도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거나 신원을 특정하기 어려우면 재심 과정에서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발제에서는 군사재판의 불법성과 재판 피해자의 명예회복이라는 취지를 반영해 재심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4·3 왜곡과 허위사실 유포를 형사처벌할지도 입법 과정의 주요 논점이다. 현행 특별법은 희생자나 유족을 비방할 목적으로 4·3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지만 이를 직접 처벌하는 별도 벌칙은 두고 있지 않다.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 사이에서도 처벌 방식과 수위가 다르다. 정춘생 의원안은 일정한 방식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두는 내용을 담았다. 위성곤 지사가 국회의원이던 2024년 대표발의한 안은 부인·비방·왜곡·날조나 허위사실 유포에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했다. 역사적 진실과 희생자 명예 보호,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적용 범위를 얼마나 명확하게 설계할지가 국회 논의의 관건이다.
4·3 진압 과정과 관련해 받은 상훈을 취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다만 상훈 박탈 역시 누구의 어떤 행위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책임 있는 행위로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심사 기준이 먼저 필요하다는 의견이 함께 제시됐다.
교육 분야에서는 특별법의 정의가 미래세대의 4·3교육과도 연결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홍일심 표선고등학교 교장은 "확인된 역사적 사실은 정확하게 가르치되 학생들이 역사적 맥락과 국가권력,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를 스스로 질문하고 판단하도록 하는 교육적 기반을 법과 제도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국회에는 4·3특별법 개정을 위한 여러 의원안이 제출돼 있다. 토론회에선 정춘생·문대림 의원과 위성곤 당시 의원이 2024년 발의한 개정안, 김한규 의원이 올해 5월 발의한 개정안을 주요 검토 대상으로 다뤘다. 각 법안에 흩어진 정명과 피해 범위, 재심, 유족 지원 등의 과제를 어떤 형태로 조정할지가 향후 입법의 핵심이다.
위성곤 제주도지사는 이날 현장에 참석하지 않고 서면 축사했다. 위 지사는 "입증 책임을 희생자와 유족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며 "국가가 더욱 적극적으로 사실을 확인하고 책임지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2028년 4·3 80주년 이전에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입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email protected] 정용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