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교육일반

기술엔 온기, 사회엔 해법… AI시대 나침반 쥔 인문학 [르포]

김만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산학연 EXPO 달군 ‘HUSS관’ 가보니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 성과 만개
음성 키오스크 등 아이디어 선봬
상아탑 벗어나 지역·산업계 협업
독서토론서 다양한 전공생 교류
55개 대학 벽 허문 ‘공유캠퍼스’
인문기반 AI교육과정 대폭 넓혀
사회적 가치·윤리적 판단 고민
인간 중심의 문제해결 역량 키워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26 산학연협력 EXPO'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사업(HUSS)관이 '방탈출' 컨셉의 이색 전시 공간을 갖추고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제공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26 산학연협력 EXPO'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사업(HUSS)관이 '방탈출' 컨셉의 이색 전시 공간을 갖추고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제공
HUSS관에서 관람객들이 글로벌·문화 컨소시엄 부스를 찾아 AI 기반 네컷만화 제작 프로그램 등 학생들의 융합 프로젝트 성과물을 체험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제공
HUSS관에서 관람객들이 글로벌·문화 컨소시엄 부스를 찾아 AI 기반 네컷만화 제작 프로그램 등 학생들의 융합 프로젝트 성과물을 체험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제공

"기술이 어떻게 개발될 것인지, 기술 개발 자체가 어떤 영향을 낳을 것인지 검토하는 것은 기술이 발전되고 개발되기 전에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성균관대 사회학과 2학년 이슬빛 학생은 지난 2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26 산학연협력 EXPO에서 펼쳐진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사업(HUSS) 대학생 독서토론 왕중왕전서 1등을 차지했다. 인구 변화와 저출생·고령화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AI가 사람의 의사결정과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주제로 토론을 준비했다.

이씨가 특히 주목한 것은 AI가 판단을 내릴 때 어떤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가 하는 문제였다. AI의 판단 기준이 다수의 가치에 치우칠 가능성도 고민했다. 그는 "AI를 인간의 판단을 대신하는 기술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람이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봤다.

그 과정에서 이씨는 기술이 나온 뒤에 인문사회적 문제를 따지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기술 개발 단계부터 사회적 영향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인문사회적 가치만 앞세워 기술 발전을 막는 것도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없는 만큼, 기술의 가능성과 사회적 가치를 함께 놓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인문사회도 산학연 협력 가세

이씨가 이런 관점을 넓힌 계기 중 하나가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사업(HUSS)이다. 그는 이번 여름 HUSS 융합캠프에 참여해 독서토론을 비롯한 프로그램을 경험했다. 사회학만 공부할 때와 달리 다른 전공 학생들과 같은 주제를 놓고 토론하면서 서로 다른 방법과 관점을 접할 수 있었다.

정병호 HUSS협의회장은 "인문사회분야는 지금까지 산학연협력과 무관한 분야로 인식돼 왔다"며, "HUSS를 통해 학생들이 교실을 벗어나 지역 공공단체 및 산업계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시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독서토론은 AI시대에 중요성이 커지는 비판력과 창의력, 문제 정의 능력, 소통 능력을 기르는 인문사회 고유의 역량 강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HUSS는 2023년 시작된 사업이다. 학과와 대학의 경계를 넘어 인문사회 기반의 융합교육을 만들고, 여러 대학이 교육과정과 인프라를 공유하는 것이 핵심이다. 2023년 5개였던 컨소시엄은 2024년 8개, 2025년 10개로 늘었고 올해는 11개로 확대됐다.

지난해까지 10개 컨소시엄에 50개 대학, 304개 학과가 참여했다. 2023~2025년 누적 참여 학생은 3만8771명이다. 같은 기간 정규 교과목은 735건이 개발돼 1635건 운영됐다. 대학 간 학점 교류와 공동 학습관리시스템(LMS) 구축, 학사제도 개편 등도 추진됐다.

허정 한국연구재단 산학협력실장은 HUSS의 가장 큰 성과로 '대학 간 협력 기반이 실제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꼽았다. 허정 실장은 "학사제도 개편, 학점 교류와 공동 LMS 같은 제도·인프라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며, "HUSS가 추구하는 '공유대학' 모델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밖으로 나간 인문사회

HUSS가 강조하는 융합교육은 강의실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병호 회장은 "학생들은 교실을 벗어나 지역 공공단체 및 산업계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시했다"며, "지역과 산업이 연계된 지산학 교육 프로그램을 모든 컨소시엄에서 운영해왔다"고 설명했다.

실제 2026 산학연협력 EXPO의 HUSS관에는 학생들이 이런 교육 과정에서 만든 결과물이 전시됐다. 부스는 일반적인 전시관과 달리 '방탈출' 형태로 꾸며졌다. 참가자는 약 15분 동안 전시된 자료를 읽고 미션을 풀어야 방을 빠져나올 수 있다. HUSS 관계자는 "단순히 부스를 둘러보고 기념품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방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사업 내용과 학생들의 성과를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방탈출 형식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HUSS는 이번 EXPO에서 우수성과 전시관으로 우수성과상도 받았다.

전시된 결과물은 사회문제와 기술을 결합한 사례가 중심이었다. 음성으로 주문할 수 있는 장애인용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HUSS 융합캠프에서 시작해 개발을 이어가고 있는 학생 아이디어다.

글로벌·문화 컨소시엄에서는 AI를 활용한 네컷만화 제작과 K-컬처 관련 체험을 마련했다. 이밖에도 학업을 중단했다가 다시 공부하려는 학생이 자신의 정보를 입력하면 진학할 수 있는 대학 정보를 찾아주는 애플리케이션과 생활 속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 학생들이 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특허를 출원한 사례도 소개됐다. 환경 컨소시엄에서는 버려지는 천을 필요한 사람에게 연결하는 공유 애플리케이션을 실제 앱스토어에 올려 활용 가능성을 높였다. 아이디어를 실제 서비스와 제품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도 함께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HUSS관에는 올해 11개 컨소시엄의 성과가 모였다. 디지털과 환경, 인구구조, 글로벌·문화 등 각 분야가 다루는 사회문제는 달랐지만, 인문사회적 질문을 다른 전공과 기술에 연결해 해결책을 찾는다는 점은 같았다.

■공유대학에서 AI까지

HUSS는 올해부터 융합교육의 범위를 AI로 넓혔다. 2026년에는 모든 컨소시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인문사회 기반 AI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시범 운영하고 있다. AI를 단순히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윤리, 정책, 문화 등 인문사회적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것이 방향이다.

허 실장은 "AI 시대에는 기술을 아는 사람뿐 아니라 기술의 사회적 가치와 윤리적 판단이 가능한 인재가 필요하다"며, "인문사회 학생이 AI를 도구로 활용하면서 사회 문제를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는 역량을 갖추게 하는 것이 AI 교육과정 도입의 배경"이라고 말했다.

교육과정에는 AI 개념과 원리 이해, 자연어처리 기초, AI와 기술윤리 같은 공통 과목과 함께 AI 시대의 경제와 노동, AI 정책과 법, AI 활용 지역사회 문제해결, AI 활용 기후·환경 데이터 분석 등 전공과 사회문제를 연결한 과목이 포함될 예정이다.

사업 기간도 기존 3년에서 6년으로 늘었다. 2026년에는 11개 컨소시엄, 55개 대학이 참여한다. 연구재단은 올해 하반기 정책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대학과 전공에 관계없이 학생들이 AI 융합교육을 이수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교육과정과 지원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다만 현장 경험을 늘리는 것은 과제로 남아 있다. 허 실장에 따르면 표준현장실습 참여 학생 비율은 2025년 평균 2.3%로 목표 달성률이 45.6%에 그쳤다. HUSS는 앞으로 참여 대학과 협력기관, 산업체, 지자체 등을 통해 실습기관을 넓히고 현장 기반 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AI가 사회 곳곳으로 빠르게 들어오는 만큼 이씨가 던진 질문은 대학 교육에도 이어지고 있다. 기술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그치지 않고, 어떤 기술을 만들고 누구를 위해 사용할 것인지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HUSS가 대학과 전공의 경계를 넘어 공유교육을 확대하고 AI 교육까지 끌어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mail protected]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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