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포럼

[포럼] 희망의 문 열린 암백신

파이낸셜뉴스
문애리 덕성여대 약대 석좌교수
문애리 덕성여대 약대 석좌교수

얼마 전 대학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던 선배를 떠나보냈다. 암이었다. 활기차고 따뜻했던 분이라 황망함이 더 컸다. 우리는 아직도 암 앞에서 속수무책인 걸까. 조기검진 확대와 금연정책, 표적·면역항암제의 등장 덕분에 고령화 효과를 걷어낸 연령표준화 암 사망률은 낮아지는 추세다. 그럼에도 암은 여전히 가장 무서운 적이다. 지난 9월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암 사망자가 처음으로 9만명을 넘었고, 사망자 네명 중 한명이 암으로 숨졌다. 심장질환과 폐렴이 뒤를 이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모더나와 머크가 개발한 암백신이 임상3상에서 효과를 입증한 것이다. 다만 '암백신'은 조금 낯설다. 백신은 본래 병원체나 그 일부를 미리 몸에 보여줘 실제 침입에 대비하게 하는 '면역 모의훈련'이다. 이름은 라틴어로 소를 뜻하는 '바카(vacca)'에서 왔다. 1796년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소의 병인 우두의 고름을 한 소년에게 접종해 천연두를 막아낸 데서 비롯됐다.

우리 몸의 면역계는 '나'와 '남'을 가려내 남만 공격하는 정교한 경비대다. 그런데 암은 밖에서 들어온 침입자가 아니라 내 세포가 변이를 일으켜 통제를 잃고 불어난 것이다. 게다가 감시망을 피하는 데 능숙해 경비대의 눈을 속이기 일쑤다.

암백신은 바로 이 틈을 파고든다. 암세포에만 있는 변이 단백질, 곧 '신생항원'의 정보를 면역세포에 건네며 "이것이 적이다"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자궁경부암을 막는 HPV 백신은 사실 바이러스를 겨냥한 것이다. 전통적인 백신이 예방에 초점을 둔다면, 암백신은 치료와 재발 방지에 무게를 둔다.

주인공인 '인티스메란 오토진(Intismeran Autogene)'은 환자 한 사람만을 위해 만드는 맞춤형 mRNA 백신이다. 떼어낸 종양의 유전자를 분석해 그 환자만의 돌연변이를 찾고, 이를 mRNA에 담아 주사한다. 세포가 이 단백질을 만들면 면역 T세포가 이를 익혀 몸속에 숨은 암세포만 골라 공격한다. 여기에 면역항암제 키트루다가 T세포의 '브레이크'를 풀어준다. 백신이 '누구를' 칠지 알려주고, 키트루다가 '마음껏' 칠 수 있게 돕는 셈이다.

임상3상은 수술받은 고위험 흑색종(피부암) 환자 1137명을 대상으로 했고, 키트루다 단독보다 재발과 원격 전이를 의미 있게 줄였다. 세부 수치는 아직 공개 전이지만 앞선 2상의 5년 추적에서는 재발·사망 위험이 49%, 원격 전이·사망 위험이 59% 낮아졌다. mRNA 기반 암백신으로는 첫 3상 성공이다.

물론 갈 길은 멀다. 같은 방식이라도 암종에 따라 결과가 엇갈린다. 바이오엔텍의 맞춤형 mRNA 백신은 대장암 2상에서 효과를 보이지 못해 시험을 멈췄다. 맞춤형인 만큼 제조·품질관리 규제도 새 과제다.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다. 백신만으로 1인당 수십만달러(수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당분간 암백신은 모두를 위한 예방주사보다는 수술 뒤 남은 암세포를 없애 재발을 막는 '보조 치료'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내 면역이 내 암을 기억하게 하는 시대의 문은 분명 열렸다. 선배를 보낸 슬픔 속에서 그 문이 더 빨리, 더 넓게 열리기를 바란다.

문애리 덕성여대 약대 석좌교수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