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나이로 재단하는 사회

파이낸셜뉴스
임상수 논설위원
임상수 논설위원

"연령 차별(Ageism)을 아시나요?" 한국 사회는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을 인권 문제로 보지만 "나이 들었으니 물러나라"는 말은 차별이 아닌 상식으로 여긴다. 그러나 나이를 이유로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것 역시 엄연한 차별이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말부터 '늙음'을 이유로 한 편견과 차별을 하나의 사회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미국보다 훨씬 빠르게 늙어가는 한국에서도 2000년대 들어 '연령 차별'이라는 개념이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국은 2024년 말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60년이면 세계 최고령국이 된다. 하지만 지금의 60대는 과거의 '노인'과 다르다. 스스로도 노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통계청의 '2025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노인들이 생각하는 '노인 기준'은 평균 71.6세였다. 지난해 65세 이상 취업자는 414만7000명으로 400만명을 넘어섰다. 여전히 현역인 셈이다.

문제는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과 제도다. 온라인 등에선 "이제는 청년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압박이 공공연하다.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반대 여론도 적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노인을 나이만으로 판단하거나 사회에 기여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는 연령주의는 노인의 사회 참여를 가로막고 존엄을 훼손할 수 있다"는 성명을 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능력주의를 표방하지만 고령 노동자는 고임금과 생산성 저하라는 선입견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은퇴자협회(AARP)의 지난해 조사에서 50세 이상 근로자의 64%가 직장에서 연령 차별을 보거나 경험했다고 답했다. 한국도 통계청의 '2024년 사회지표'에서 연령(5.1%)이 성별(4.5%), 경제적 지위(3.8%)를 제치고 차별 사유 1위에 올랐다.

이런 편견은 당사자의 내면에도 스며든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스티븐 페트로는 지난해 칼럼에서 50대 시절 이력서에서 대학 졸업연도를 지우는 등 '나이 듦'을 부정했다고 고백했다. "노인은 쇠약하고 무능하다"는 사회의 고정관념을 받아들여 자신의 나이를 부끄럽게 여겼다는 것이다. 예일대 심리학자 베카 레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부정적 관념을 내면화한 사람보다 평균 7.5년 더 살았다. 나이에 대한 편견이 건강과 수명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떤 말이 차별인지 판단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노인' 대신 '장애인'이나 '흑인' 같은 다른 소수집단을 넣어보는 것이다. "늙었으니 물러나라"를 "장애인이니 물러나라"로 바꿔보면 그 말이 얼마나 노골적 차별인지 금세 드러난다.

미국은 1967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ADEA)'을 제정해 연령을 이유로 한 고용 차별을 금지했고, 1986년에는 법 적용의 연령 상한을 없앴다. 나이라는 자의적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거나 배제해선 안 된다는 철학이 바탕에 있다. 한국도 2009년부터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있지만 제재가 대부분 시정권고·명령 위주여서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고 미국식 고용 유연성을 그대로 들여올 수는 없다. 우리가 차용할 것은 제도가 아니라 나이라는 숫자로 사람을 재단하지 않고 개인의 역량과 존엄을 먼저 보는 철학이다.

초고령사회 한국이 나아갈 길은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강요하거나 "어른을 공경하라"는 신파적 윤리를 되풀이하는 데 있지 않다. 인종이나 장애를 이유로 차별하지 않듯 나이라는 숫자만으로 개인을 배제하지 않는 사회적 성숙을 갖추는 것이다. 60대 이상 세대 역시 내면화한 연령 차별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존엄을 회복해야 한다. 선진 초고령사회의 품격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존엄한 인격으로 존중받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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