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블록체인 제도화 서둘러야
"1~2년 안에 담보의 토큰화가, 5년 뒤엔 증권거래소 인프라가 모두 블록체인으로 옮겨갈 겁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 직무대행을 지낸 캐롤라인 팜 문페이 최고법무책임자는 지난달 30일 '코리아블록체인위크 2026(KBW2026)' 무대에서 이런 시간표를 내놨다. 뉴욕증권거래소의 주식이 통째로 온체인에 올라가기까지 5년 남았다는 얘기다.
허풍으로 흘려듣기에는 현장 분위기가 달랐다. 그동안 블록체인 행사는 후드티에 백팩을 멘 개발자들의 축제였다. 올해 워커힐 행사장에는 정장 차림이 부쩍 늘어 "여의도에 온 줄 알았다"는 말까지 나왔다. 연사 10명 중 4명이 금융·정책 분야 인사였다. 한국투자증권·교보생명·현대카드 등은 '기관 파트너'로 이름을 올렸다. 후드와 정장이 한 테이블에 앉은 셈이다. 해외 연사들이 한국에 건넨 메시지도 한결같았다. 패트릭 위트 백악관 대통령 가상자산자문위원회 집행이사는 "문제가 발생한 뒤 대응하기보다 그 전에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기존 방식만 고수하면 주도권을 다른 나라에 내줄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정작 그 '적기'에 한국 국회는 멈춰 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지난해 6월 발의된 뒤 1년 넘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 계류돼 있다. 쟁점은 1년째 그대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컨소시엄에서 은행이 '50%+1주'를 가져야 하는지, 거래소 대주주 지분을 어디까지 묶을지다. 일정도 녹록지 않다. 10월 국정감사와 12월 예산정국을 지나면 올해는 사실상 끝이다. 내년은 총선을 앞둔 해라 스테이블코인이나 코인공개(ICO)처럼 민감한 문제가 국회에서 논의되긴 어렵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2년은 더 걸린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는 차라리 정부안을 내놓으라고 한다. 하지만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로 홍역을 치른 금융위원회가 또 다른 뜨거운 감자를 먼저 꺼내 들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그사이 빈자리는 남이 채운다. 문페이는 최근 한국법인을 세우고 우리은행·KB금융·카카오뱅크와 손을 잡았다. 법인 투자 수요가 큰 기업들은 싱가포르 등 해외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판은 벌어지는데 규칙이 없으니 판돈이 밖으로 샌다.
서두르다 탈이 나느니 신중한 편이 낫다는 말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1년 넘게 같은 쟁점을 맴도는 것을 신중함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후드는 이미 정장을 차려입고 제도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제 넥타이를 고쳐 맬 곳은 국회다.
[email protected] 한영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