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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 검' 포장 뜯으니… 물로 사라지는 친환경 반도체 [언박싱 연구실]

김만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67>서울시립대 김혁 교수팀
천연 아라비아 검 활용 유기 박막트랜지스터 개발
물에 넣으면 30초 만에 용해… 전자폐기물 걱정 해결
친환경 웨어러블·일회용 기기 적용 기대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서울시립대 김혁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아라비아 검' 기반 유기 박막트랜지스터를 물에 넣자 절연층이 녹아내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 소자는 물속에 담근 지 약 10초 뒤부터 반응이 시작되어 30초 만에 절연층이 완전히 용해된다. (그래픽=제미나이 생성)
서울시립대 김혁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아라비아 검' 기반 유기 박막트랜지스터를 물에 넣자 절연층이 녹아내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 소자는 물속에 담근 지 약 10초 뒤부터 반응이 시작되어 30초 만에 절연층이 완전히 용해된다. (그래픽=제미나이 생성)

[파이낸셜뉴스] 서울시립대 김혁 교수팀이 아카시아나무에서 얻은 천연 물질인 '아라비아 검'을 이용해 새로운 반도체 소자를 만들었다. 이 소자는 물을 이용해 만들 수 있고, 사용한 뒤 물에 넣으면 절연층이 약 30초 만에 녹아 없어진다. 또 ±3V의 낮은 전압에서도 작동했고, 전기가 얼마나 잘 흐르는지를 보여주는 전하이동도는 평균 8.90㎠/V·s, 가장 높은 값은 20.72㎠/V·s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개발한 이 소자는 일정 기간 사용한 뒤 없앨 수 있는 전자기기에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몸에 붙여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웨어러블 센서나 짧은 기간만 사용하는 일회용 전자기기 등에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물에 녹는 천연 물질로 반도체 만들어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아카시아나무에서 얻는 '아라비아 검'이다. 아라비아 검은 물에 잘 녹는 천연 물질이다.

연구팀은 이 물질을 물에 녹여 반도체 소자의 절연층을 만들었다. 절연층은 반도체에서 전기가 흐르는 양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기존에는 절연층을 만들 때 유기용매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연구팀은 아라비아 검을 이용해 물로 만드는 방법을 찾았다.

연구팀은 아라비아 검의 농도를 20%, 30%, 40%로 달리해 어떤 조건에서 가장 좋은 소자가 만들어지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30% 농도에서 가장 좋은 결과가 나왔다. 이때 만들어진 절연층의 표면은 약 1.6나노미터로 매우 매끄러웠다. 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다. 또 눈에 보이는 빛의 90% 이상이 통과할 정도로 투명했다.

전기를 끌어모으는 성질을 나타내는 유전율도 약 27로 나타났다. 비교 대상으로 사용한 PMMA의 유전율은 약 3이었다. 아라비아 검으로 만든 절연층의 값이 약 9배 높았다.

이처럼 전기를 끌어모으는 성질이 높으면 적은 전압으로도 반도체 안에 전기를 모을 수 있다. 연구팀이 낮은 전압에서 소자를 작동시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연구팀은 이 절연층 위에 DNTT라는 유기 반도체 물질을 올렸다. 이렇게 만든 소자는 전기가 흐르는 길이 만들어지는 박막트랜지스터다. 쉽게 말하면 작은 전기 신호를 이용해 전기가 흐르는 것을 조절하는 장치다.

■±3V에서도 작동…평균 8.90 기록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같은 조건에서 만든 소자 16개를 측정했다. 30% 농도의 아라비아 검을 사용한 소자는 평균 전하이동도가 8.90㎠/V·s였고, 가장 높은 소자는 20.72㎠/V·s를 기록했다.

전하이동도는 반도체 안에서 전기가 얼마나 잘 이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숫자가 높을수록 전기가 더 잘 이동한다.

특히 전압을 크게 낮췄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아라비아 검을 사용한 소자는 ±3V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반면 비교 대상으로 만든 PMMA 소자는 약 ±20V의 전압이 필요했고 전하이동도는 약 0.2㎠/V·s에 그쳤다.

즉 아라비아 검을 사용한 소자는 기존 비교 소자보다 훨씬 낮은 전압에서 작동하면서도 전기가 이동하는 성능은 더 높았다.

연구팀은 아라비아 검으로 만든 절연층의 매끄러운 표면이 성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봤다. 표면이 매끄러워지면서 그 위에 올린 DNTT 분자들이 고르게 배열됐고, 전기가 흐르는 것을 방해하는 문제가 줄었다. 실제로 아라비아 검을 사용한 소자는 PMMA를 사용한 소자보다 전기가 흐르는 것을 방해하는 결함도 적었다.

소자의 안정성도 확인됐다. 전압을 반복해서 걸어도 성능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전압을 올렸다가 다시 낮췄을 때 나타나는 성능 차이도 약 0.4V로 작았다.

연구팀은 실험 결과가 우연히 나온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여러 차례 소자를 만들어 시험했다. 20%, 30%, 40% 농도의 아라비아 검 소자와 PMMA 비교 소자를 각각 16개씩 만들었고, 세 차례에 걸쳐 나눠 제작했다. 소자가 제대로 만들어진 비율은 모든 조건에서 95%를 넘었다. 제작 시기가 달라져도 전하이동도의 차이는 8% 이내였다.

■물에 넣자 10초부터 녹기 시작

사용 후 물에 넣었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도 확인했다.

완성된 소자를 물에 담그자 약 10초가 지나면서 아라비아 검으로 만든 절연층이 흐려지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약 30초가 지나자 절연층이 완전히 녹아 없어졌다. 논문에서는 물에 넣기 전에는 소자의 형태가 유지됐지만, 물에 담근 뒤에는 아라비아 검으로 만든 부분이 빠르게 녹았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평소에는 쉽게 녹지 않았다. 습도가 50%보다 낮은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아라비아 검으로 만든 막이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사용할 때는 형태를 유지하다가 물에 닿으면 빠르게 사라지는 특성을 확인한 것이다.

이런 특성을 이용하면 일정 기간만 사용하고 없애는 전자기기를 만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일정 기간 몸에 붙여 정보를 측정한 뒤 제거하는 웨어러블 센서나 사용 기간이 짧은 일회용 전자기기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반도체의 성능뿐 아니라 만드는 과정과 사용 후 처리 방법까지 함께 고려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라비아 검을 물에 녹여 절연층을 만들 수 있고, 낮은 전압에서도 소자를 작동시킬 수 있으며, 사용 후에는 물에 넣어 절연층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 성과는 재료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티리얼스(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게재됐다. 이미리내·장효원·Swarup Biswas 연구원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고 김혁 교수가 교신저자로 연구를 이끌었다.

[email protected]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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