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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트럼프·김정은 만남 앞둔 우리의 과제

파이낸셜뉴스

北, 지뢰 도발하고도 적반하장
南의 선의 외면·악용하는 행태
미북 핵협상 때 재연될까 걱정
북핵, 지뢰보다 수백만 배 위험
비핵화 약속 후 뒤집지 못하게
한미, 안전장치 미리 조율해야

[구본영 칼럼] 트럼프·김정은 만남 앞둔 우리의 과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 사건의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1일 수색대대장이 발목을 잃는 등 우리 장병 3명이 다친 지 보름이 훌쩍 지났다. 그사이 군 당국이 늑장 조사 논란 끝에 북한 지뢰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은 "서울의 자작광대극"이라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심지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난 3일 극초음속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북의 적반하장은 규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정부의 안이한 자세도 되돌아봐야 하겠다. 북한 지뢰들이 1년 이상 지속된 북측의 '국경 요새화' 과정에서 매설됐을 것으로 추정된다니 그렇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맺은 남북 9·19군사합의 이후 최전방 감시초소(GP)를 철수하는 등 경계가 계속 느슨해진 결과라면 말이다. 애초 북의 지킬 의지가 없는 합의만 믿고 값비싼 대가를 치른 격이 아닌가.

동서고금의 전쟁사를 통틀어 전쟁은 무력이 균형을 이룰 때는 일어나지 않았다. 호의를 베풀면 상대도 화답할 것으로 믿고 일방이 먼저 긴장을 늦추거나 무기를 내려놓을 때 주로 발발했다. 손자병법 허실편의 "물은 지형의 높낮이에 따라 흐르고 군사는 적의 허를 향해 움직인다"는 구절의 함의 그대로다. 로마제국 이래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대비하라"는 경구가 설득력 있게 회자된 배경이다.

북이 군사분계선(MDL) 인근에 매설한 지뢰는 무차별 살상무기다. 하지만 대량살상 효과에서 핵폭탄에 비할 바는 아니다. 외신은 이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간 회담 가능성을 보도했다. 트럼프는 지난 4일 북한이 핵미사일 112개를 갖고 있다는 취지로 '천기'를 누설했다. 우리 사회가 북핵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미 대화 재개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을 희망했다. 미국에 피스메이커 역을 맡기는 대신 페이스메이커 역을 자임하면서다. 앞서 이 대통령은 외신 회견에서 "별 효과도 없는 대북제재와 추가 핵무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중단을 맞바꾸는 것은 상당한 가치가 있다"며 애드벌룬을 띄웠다. 대화·협상으로 한반도 평화를 일구려는 취지 자체는 옳다.

그러나 북이 호응하지 않으니 문제다.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달 28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핵보유국 지위는 어떤 경우에도 되돌릴 수 없다"고 공언했다. 이 대통령의 '동결·제재완화→축소→폐기'라는 3단계 비핵화 방안을 6일 만에 일축했다.

이처럼 우리의 선의에 북은 화답은커녕 악용하기 일쑤였다. 지뢰 도발만 그런 게 아니다. 제네바합의나 6자회담 등 북핵 협상 전말을 봐도 그렇다. 북측은 핵동결의 대가로 보상만 받은 채 합의를 이행하지 않거나, 동결 검증 과정에서 협조는커녕 몰래 다른 핵 프로그램을 가동하다 판을 깨는 게 상례였다. 2008년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쇼'를 벌이고도 우라늄 농축 등을 계속한 게 그 증거다. 2018년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를 폭파하는 시늉을 했지만 이후 복구 움직임이 포착됐었다.

그래서 "핵 폐기가 아닌 동결을 대가로 대북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이 대통령의 제안이 안전한 시그널로 비치지 않는다. 북의 행태로 볼 때 추가 핵과 ICBM 개발 중단 언질을 하고도 나중에 뒤집을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과 북한이 핵 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유엔 안보리 제재를 자동 복원하는 스냅백(snapback) 조항 없이 덜컥 합의문에 서명할 경우 더욱 그럴 것이다.

만에 하나 트럼프 대통령이 ICBM 포기 약속만 받고 파키스탄 사례처럼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 보유를 묵인하는 선택을 한다면? 북의 중·단거리미사일에 장착할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게 되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재앙이다. 국제정치학에 '핵은 핵으로만 막을 수 있다'는 '공포의 균형' 이론이 있다. 이를 원용할 경우 북핵에 맞서 우리의 독자적 핵무장이 불가피하다.

다만 핵확산금지조약(NPT) 등 국제정치적 제약조건을 감안한다면 협상이 현실적 선택이다. 이 또한 우리에겐 험난한 과제다. 북의 핵무장 의지가 '상수'에 가까워서다. 이는 남북 교류·협력 시 세습체제가 흔들리게 되는 북한 정권의 딜레마 탓이다. 처음 한두 번 속으면 속인 쪽이 나쁘지만, 여러 번 속으면 속은 쪽도 잘못이다. 정부는 각종 안전장치 확보를 북미 협상의 대전제로 삼아야 한다. 북이 우리의 선의에 호응하지 않을 개연성도 염두에 두란 뜻이다. 미국 전술핵의 재배치나 나토식 핵 공유 등 유사시 안전판도 미리 강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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