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중기 생존용 ‘호흡기’ 떼는 일본
"중소기업을 단 한 곳도 도산시키지 않는 자민당. 그 정책을 자랑스럽게 추진해왔지만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6일 도쿄 일본외신기자센터(FPCJ)에서 진행된 외신 브리핑에서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산업상이 본론을 시작하며 꺼낸 첫마디다. 반도체나 인공지능(AI) 투자가 먼저 나올 법한 '일본의 성장전략' 설명 자리여서 뜻밖이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내각은 AI·반도체 등 17개 전략 분야를 중심으로 향후 5년의 투자 방향과 예산·목표를 담은 실행 계획을 연말까지 마련한다. 이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아카자와 경제산업상은 중소기업 보호 기조부터 문제 삼았다.
전날 공개된 통계는 그 발언을 더욱 의외로 느끼게 했다. 도쿄상공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4~9월 인력 부족 관련 도산은 240건으로 2013년 조사 시작 이후 같은 기간 기준 가장 많았다. 인건비 급등이 원인인 사례만 130건이었다. 이렇게 기업들이 문을 닫는데 왜 보호 기조를 바꾸자는 것일까.
아카자와의 설명은 인구에서 시작됐다. 인구가 늘 때는 노동시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했다. 임금이 낮고 노동시간이 길어도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은 실업을 막았다. 기업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생계를 지키는 일이었다.
금융위기와 코로나19 때도 회사를 지켜 위기 이후 다시 생산하고 고용할 기반을 남기려 했다. 생존에는 회복을 기다리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인구 감소에 따른 인력 부족은 경기 회복만으로 풀리지 않는다.
아카자와는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도 기업 수가 그대로라면 인구 대비 사장 수가 두 배가 된다고 비유했다. 기업 수를 유지한다고 일할 사람이 늘지는 않는다. 사람을 더 뽑아 사업을 키우던 방식에도 한계가 생긴다.
현장에서는 기존 직원을 붙잡는 일도 어려워지고 있다. 올해 5월 파산한 화물운송업체 도카이서비스가 그런 사례다. 데이코쿠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수주환경 악화와 연료비 상승으로 수익성에 압박을 받은 이 회사는 운전기사의 임금을 올리지 못했다. 그 결과 기사들의 퇴사가 잇따랐다. 고용을 유지하려 해도 임금을 높일 여력이 없으면 사람을 붙잡기 어렵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아카자와의 해법은 생산방식의 변화다. 그는 낮은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는 환경이 설비투자를 늦췄다고 진단했다. 중소기업 우대를 점차 줄이는 대신 성장에 나서는 기업에 AI 도입 등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임금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임금을 올릴 돈이 부족한 기업에 투자는 더 높은 문턱일 수 있다. 비용 상승이 투자를 자극할 수는 있어도 재원까지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지원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기업의 변화가 느리면 생산성을 높이기도 전에 회사가 사라질 수 있다.
반대로 지원으로 버텨도 임금과 근무여건이 그대로라면 인력유출은 이어질 수 있다. 경영난 때문에 임금을 올리지 못하고 사람이 떠나 경영이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다.
일본 고용의 약 70%는 중소기업·소규모 사업자가 담당한다. 이들이 구인난으로 사업을 늘리지 못하면 첨단산업 투자만으로 경제 전체를 끌어올리기 어렵다. 이제 새로운 산업을 키우는 일만큼 기존 경제를 적은 인원으로 움직이는 일도 각국 성장의 과제가 됐다.
이는 인구 감소를 겪는 한국에도 낯설지 않은 고민이다.
한때는 회사가 무너지면 사람이 갈 곳을 잃을까 걱정했다. 도카이서비스에서는 경영난 속에 사람들이 떠났고, 회사도 파산에 이르렀다. 회사를 지키는 것만으로 고용을 지키기 어려운 현실이다. 성장전략의 첫머리에 나온 도산 얘기는 기업의 생존 다음에 무엇이 남는지를 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