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의사·기자·엔지니어 뭉친 베트남 '외인구단'...'야구계 박항서' 만나 '무한도전' [동남아 돋보기]

김준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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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유재호 베트남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외인구단'
부상 악재 딛고 베트남서 지도자로 야구 인생 '2막'
"74위 베트남팀, 60위 이내 진입이 목표"
'야구 불모지' 베트남에 K야구 전파
주차장 가로등 밑에서 훈련...열악한 환경에도 열정 넘쳐
베트남 야구 국대 "'팀워크' 중요한 야구 매력적" 매료

지난 3일 베트남 하노이 미딘운동장 야구장에서 훈련을 마친 베트남 야구 국가대표팀이 유재호 감독의 구령에 맞춰 힘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김준석 특파원
지난 3일 베트남 하노이 미딘운동장 야구장에서 훈련을 마친 베트남 야구 국가대표팀이 유재호 감독의 구령에 맞춰 힘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김준석 특파원

【하노이(베트남)=김준석 특파원】"못(하나), 하이(둘), 바(셋), 비엣남(베트남)!"
지난 3일 베트남 하노이 미딘운동장 야구장.

훈련을 마친 베트남 야구 국가대표팀이 유재호 감독의 구령에 맞춰 힘찬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10월임에도 35도 전후를 넘나드는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선수들의 눈빛은 뜨겁게 빛났습니다. 유 감독은 직접 마운드에 올라 선수들의 타격 자세를 하나하나 교정했고, 수비 훈련 때는 "냐잉(빨리), 냐잉(빨리)!"을 외치며 선수들의 긴장감을 끌어올렸습니다. 제대로 된 조명탑 하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베트남 야구의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는 감독과 선수들의 열정으로 훈련 현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찼습니다.

베트남은 실업 야구팀이 없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들 모두 치과의사, 기자, 대학생, 고등학생, 사진작가, 엔지니어 등 본업이 따로 있어 주말에만 시간을 내 훈련을 진행합니다. 게다가 하노이와 하노이로부터 1700㎞ 떨어진 호찌민 지역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을 이루다 보니 한자리에 모여 합을 맞추는 것조차 쉽지 않은 여건입니다. 유 감독은 "서로 다른 생활 환경과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고 하나의 팀으로 묶이는 '팀워크와 단합'을 이번 훈련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두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훈련 후 베트남 국가대표팀 선수 전원과 유재호 감독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유재호 감독 제공
훈련 후 베트남 국가대표팀 선수 전원과 유재호 감독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유재호 감독 제공

베트남은 현재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에 등록된 85개 남자 야구 국가대표팀 중 74위로 최약체 중 하나로 꼽힙니다. 국민 스포츠인 축구와 달리 2020년 12월에야 겨우 공식 베트남야구소프트볼연맹(VBSF)이 출범했을 정도로 야구 불모지에 가깝습니다.

유 감독은 "우선 랭킹 60위권 안으로 진입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면서 "세계 랭킹이 올라가야 대표팀이 더 큰 국제 무대를 경험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베트남 야구의 선수층과 저변도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베트남 야구계의 숙제로 "선수 저변 확대와 함께 실업팀 신설"을 꼽았습니다.

유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대표팀은 8일 라오스전 시작으로 베트남·라오스·몽골 3개국이 겨루는 제1회 '드림컵(Dream Cup)'에 출전해 그간 갈고닦은 실력을 검증받습니다.

지난 3일 베트남 하노이 미딘운동장 야구장에서 유재호 베트남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투수 선수의 자세를 지도하고 있다. 사진=김준석 특파원
지난 3일 베트남 하노이 미딘운동장 야구장에서 유재호 베트남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투수 선수의 자세를 지도하고 있다. 사진=김준석 특파원

LG 트윈스 외야수 출신인 유 감독은 대구고 시절 청룡기와 봉황대기 2관왕을 이끈 4번 타자로 활약했으며, 2010년 신인드래프트 2차 7순위로 프로에 입단했습니다. 하지만, 입단 후 세 차례의 무릎 수술 등 부상 악재가 겹쳤고, 해병대 복무 후 2016년 방출됐습니다. 이후 한화 이글스 입단 테스트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입어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은퇴 후인 2016년 10월, 대구고 시절 스승인 권영진 감독이 이끄는 라오스 국가대표팀 코치로 합류하며 지도자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후 베트남에 정착해 8년간 한국국제학교 체육 교사로 근무했고, 2020년 베트남야구협회 출범과 함께 초대 임시 감독을 거쳐 정식 사령탑에 올랐습니다. 2022년부터는 베트남 최고 구단인 하노이 아처스 클럽 감독도 맡아 베트남 야구 저변 확대에 힘쓰고 있습니다.

야구 불모지 베트남에서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을 묻자 유 감독은 "하노이 아처스 초창기 멤버들이 야구의 끈을 놓지 않고 대학팀이나 클럽팀으로 나아가고, 그 선수들이 다시 코치가 되어 후배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볼 때"라며 "베트남 땅에서 야구가 조금씩 뿌리내리고 확산되는 것을 체감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야구가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지원도 넘어야 할 산입니다. 유 감독은 "초창기에는 전쟁박물관 주차장 가로등 불빛 아래서 훈련할 만큼 열악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그는 "비용 부담 탓에 이번 드림컵 출전도 불투명했지만, 한국 야구를 베트남에 전파하려는 진정성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신 베트남 한인 사회 덕분에 극적으로 참가할 수 있게 됐다"며 "에버론의 이재은 대표, 톡톡의 윤휘 대표, 리프텍의 유경남 대표, 미래희망나눔재단의 송영일 대표, 퍼시스 등 여러 한인 인사와 기업들이 후원자로 뜻을 함께 해줘 책임감이 막중하다"고 말했습니다.

8년 전 훈련 장소가 마땅치 않아 전쟁박물관 주차장에서 가로등 불빛 하나에 의지해 유재호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이 타격 자세를 지도하고 있다. 사진=유재호 감독 제공
8년 전 훈련 장소가 마땅치 않아 전쟁박물관 주차장에서 가로등 불빛 하나에 의지해 유재호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이 타격 자세를 지도하고 있다. 사진=유재호 감독 제공

베트남 야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축구 대신 야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선수들은 입을 모아 '팀워크의 매력'을 첫손에 꼽았습니다.

이날 유 감독의 지시를 유창한 베트남어로 전달한 원성남 선수는 베트남 국가대표팀의 든든한 가교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하노이 한국국제학교 12학년(한국의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원 선수는 초등학교 시절 방과 후 활동을 통해 처음 야구를 시작한 뒤, 일본국제학교 등과의 친선 경기를 하며 야구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이후 한국과 베트남 이중국적자인 원 선수는 한국을 자주 오가며 KBO리그를 즐겼고, 자연스럽게 야구선수의 꿈을 이어왔습니다. 이러한 열정 덕분에 원 선수는 4년 전 베트남 국가대표로 선발됐으며, KBO의 개도국 야구 지원 사업 등에 참여하며 기량을 꾸준히 갈고닦았습니다.

원 선수는 "축구는 뛰어난 스트라이커 한 명이 골을 넣어 승리를 이끌 수 있지만, 야구는 아무리 한 선수가 잘해도 혼자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며 "팀 전체가 합을 맞춰 나가야 하는 야구만의 독특한 매력에 매료됐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최근 서울 명문 대학 경영학과에 합격한 원 선수는 "대학 입학 후에도 동아리 활동을 통해 야구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지난 3일 베트남 하노이 미딘운동장 야구장에서 훈련을 마친 베트남 야구 국가대표 선수인 원성남 선수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김준석 특파원
지난 3일 베트남 하노이 미딘운동장 야구장에서 훈련을 마친 베트남 야구 국가대표 선수인 원성남 선수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김준석 특파원

세일즈 엔지니어가 본업인 주장 쩐 으옥 뚜 선수는 2010년 일본 만화 작가 아다치 미츠루의 야구 만화를 접하며 야구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하교길에 공원에서 우연히 야구를 하던 형들을 보고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뚜 선수는 "당시 베트남에서 야구는 지금보다 더 생소한 종목이었고 제대로 된 장비를 구하기도 어려웠다"면서 "글러브 대신 모자로 공을 받기도 했고, 공이 터지면 직접 꿰매 다시 사용했다"고 말했습니다.
축구가 아닌 야구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뚜 선수도 망설임 없이 '팀워크'를 첫손에 꼽았습니다. 뚜 선수는 "야구는 팀워크가 절대적인 종목이라 선수들끼리 늘 소통하고 깊이 교감해야 한다"면서 "매 순간 예측할 수 없는 변수 속에서 득점 하나, 아웃 하나에 선수와 관중이 다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다는 점이 야구에 매료된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동남아 돋보기]는 글로벌 공급망과 외교·안보의 핵심 요충지로 부상한 동남아시아의 주요 현안과 비하인드 뉴스를 현지에서 생생하고 깊이 있게 전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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