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고민 털어놓는 시대… 정신건강 목적 AI 이용 수칙 21개 공개
[파이낸셜뉴스] 생성형 인공지능(AI) 이용자 10명 중 7명이 일상 대화나 위로, 심리상담 등 정서적 목적으로 AI를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I와의 대화를 멈추지 못하거나 AI 조언만 믿고 퇴사·이별 같은 중요한 결정을 내린 사례도 10명 중 1명꼴로 확인되면서, 정부가 정신건강 목적의 AI 이용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2026년 정신건강의 날(10월 10일)을 맞아 '정신건강 목적 생성형 AI 이용 가이드라인'을 8일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은 모든 이용자용과 아동·청소년 및 보호자용 2종으로 구성됐다.
최근 생성형 AI는 업무·정보 검색 도구를 넘어 감정적 교감과 심리상담 상대 역할까지 하고 있다. 즉각적인 응답과 편리함이라는 장점 이면에 개인정보 노출, 잘못된 정신건강 정보, 정신질환 자가 진단, 과의존 등 새로운 위험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앞서 '제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2026~2030)'과 '10대 청소년 자살예방 범정부추진 대책'을 통해 AI 과의존 가이드라인 마련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8월 25일부터 9월 4일까지 최근 1개월 내 생성형 AI를 이용한 15~79세 10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1.3%는 과제·업무나 정보 검색 목적으로 AI를 처음 접했지만 현재 68.8%가 정서적 목적으로도 AI를 이용하고 있었다.
AI의 도움을 받았다는 응답은 79.9%에 달했다. 자신의 상황이 명확하게 정리됐다(54.9%), 몰랐던 정신건강 정보나 서비스를 알게 됐다(49.8%), 감정의 원인을 돌아보게 됐다(49.7%) 등이다. 반면 현실의 일에 집중하려 해도 대화를 이어가게 된다는 응답이 16.3%, 대화 시간을 조절하지 못해 수면이나 일상에 방해를 받았다는 응답이 9.8%였다. 주변과 상의 없이 AI 조언으로 퇴사·이별 등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는 응답도 10.6%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86.9%는 AI 이용과 관련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가장 시급한 지원 영역으로는 AI 정신건강 가이드라인 수립 및 법제도 정비(68.7%), 대화 기록의 저장·활용 규율과 이용자 통제권 보장(66.8%)이 꼽혔다.
복지부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협력하고 미디어·공학 등 분야 전문가 자문을 거쳐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모든 이용자용 가이드라인은 3가지 핵심 메시지와 21개 권고문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는 "마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살펴보고 정해두세요"다. 조사 결과 AI 이용 시 개인정보 보호 조치를 취하는 비율은 50~60% 수준에 그쳤고, 대화 내용 유출이나 목적 외 활용을 우려한 응답자도 38.0%였다. 가이드라인은 서비스의 목적·대상·효과 근거와 개인정보 처리방식을 미리 확인하고, 의학적 효과를 내세우는 서비스는 공인기관의 검증·승인 여부를 살피도록 했다. 또 이름·연락처·주소 등 개인정보와 진단서·처방전 같은 민감 자료는 입력하지 말고, 대화 범위와 종료 시점을 미리 정해두도록 했다.
두 번째는 "내 상태에 대한 AI의 말을 결론으로 삼지 마세요"다. AI 답변을 의학적 진단처럼 받아들인 경험은 14.6%로, 자신의 정신건강이 나쁘다고 인식한 응답자에서는 33.9%까지 높아졌다. 반면 AI의 조언을 전문가나 공식 자료로 확인한 비율은 11.9%에 불과했다. 가이드라인은 AI의 진단을 확정적 판단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학회·정부기관 등의 검증된 자료나 전문가를 통해 확인하도록 권고했다.
세 번째는 "AI와 거리를 두고, 사람에게 이야기해 주세요"다. 이용 조절의 어려움과 판단 의존 경향은 정서적 목적 이용자에서 더 두드러져, AI 조언만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는 응답이 17.8%로 전체 평균보다 높았다. 특히 우울감이나 자해, 자살 충동 등 위기 상황을 AI에 털어놓은 응답자의 49.6%는 대화를 중단하는 것 외에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가이드라인은 AI를 실제 사람처럼 여기지 말고, 가족·친구와의 관계가 줄어들 때는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도록 했다. 중요한 결정은 사람과 상의하고, 위기 상황에서는 자살예방상담전화(109),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1577-0199) 등 전문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도록 안내했다.
청소년(15~18세)의 69.2%가 정서적 목적으로 AI를 이용했고, 스스로 AI에 의존적이라고 답한 비율은 51.7%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아동·청소년용 권고사항 7개는 AI 답변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먼저 살피고, AI 캐릭터를 실제 친구나 연인처럼 여기지 않는지 점검하도록 했다. 부적절한 답변을 받으면 부모·교사 등 믿을 수 있는 어른에게 알리고, 청소년상담1388 등 도움받을 기관을 미리 알아두도록 권고했다.
청소년의 83.1%는 보호자가 자신의 AI 이용 사실을 안다고 답했지만, 이용 규칙을 함께 정한 경우는 2.5%에 그쳤다. 이에 보호자용 권고사항 7개는 AI 이용을 무조건 금지하거나 통제하기보다 아이가 AI를 무엇을 위해, 어떻게 이용하는지 먼저 이해하는 데 방점을 뒀다. 이용 전 기본 규칙을 함께 정하고, 이용 사실을 알게 되면 꾸짖기보다 경청하며, 아이가 AI에 정서적으로 지나치게 의지하지 않는지, 이용 시간과 대인관계에 변화가 없는지 살피도록 했다. 우울감, 자해·자살 생각 등 위기 신호가 보이면 즉시 전문기관의 도움을 요청하도록 했다.
복지부는 주체적인 AI 이용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2027년에는 중증정신질환자 등 고위험군을 위한 맞춤형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선영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관은 "친절하고 확신에 찬 답변이 항상 정확성이나 안전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며 "이번 가이드라인을 시작으로 이용자 교육을 확대하는 등 AI 전환기에 대응하는 정신건강 정책을 지속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최준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정신건강 문제는 증상 하나만이 아니라 개인의 삶과 대인관계,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며 "AI는 전문적인 평가와 치료를 대신할 수 없는 만큼 필요한 경우 의료진의 도움을 적기에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