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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한반도 평화 지키려면

파이낸셜뉴스

北, 자신들의 核능력에만 의존
우리 정부 평화공존 제안 무시
어떻게 우호적 관계 만들건가
안으로는 自强의 태세 정비하고
한미동맹 현대화·국제규범 수호
현실주의 평화론이 불가피한 선택

박영준 국방대학교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박영준 국방대학교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냉전시대였던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기, 한국의 지식인들은 북한과의 대결상태 속에서 어떻게 한반도 평화의 조건을 만들어 낼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고려대학교 이호재 교수는 당시 발표했던 글들을 통해 1970년대에 한반도가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조건으로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 미소중일 등 주변 강대국들의 데탕트 기조, 경제개발 정책으로 인한 경제력과 군사력 증강, 그로 인해 조성된 남북한 간 군사력에 의한 공포의 균형을 들었다. 그리고 이 같은 조건들이 향후에도 한반도 평화의 기반으로서 지속될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한편 같은 시기에 서울대 김학준 교수는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무력충돌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에 대한 4강의 교차승인과 남북 동시 유엔 가입, 남북한 간 상호 불가침 협정이나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교류와 협력의 증진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하였다. 이호재 교수의 분석과 정책 대안 제시가 현실주의적 평화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김학준 교수의 그것은 자유주의적 평화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이후 역대 한국의 보수와 진보 정부는 이 같은 상반된 평화론을 각각 대북정책에 적용하며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고자 하였다. 대체로 보수 정부는 자주국방 능력이나 한미동맹의 강화에 중점을 둔 대북 안보정책을 추진하였고, 진보 정부는 남북 간 경제교류 증진이나 정상회담 추진 등을 통해 북한을 평화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 같은 두가지 평화정책론의 추진에 의해 남북기본합의서나 비핵화공동선언 발표, 그리고 몇 차례의 정상회담 등 인상적인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다만 21세기 접어들어 몇 가지 요인에 의해 한반도의 평화는 더욱 난도가 높아진 정책과제가 되고 있다. 북한은 핵능력을 고도화하면서 적대적 두 국가론을 표방하고 있다. 비무장지대(DMZ) 내의 국경화를 추구하면서, 지뢰 도발도 자행하고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러시아나 미국 같은 강대국들이 각각 유럽과 중동에서 전쟁을 벌이면서, 유엔 같은 국제기구나 핵확산금지조약(NPT) 같은 국제규범들이 약화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와 포괄적전략적동반자조약을 체결하고 우크라이나 전선에 병력을 파병함으로써 한반도 정세에도 암운을 드리우고 있고, 중동지역 전쟁의 여파로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서 한국의 경제안보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냉전시대와 달리 21세기 한반도 평화의 조건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나 공세적 대남정책을 억제하는 태세를 구축해야 하고, 동시에 강대국들의 전쟁으로 인한 국제질서 불안과 국제기구의 기능부전을 최소화하려는 대외정책이 병행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경축사와 9월 22일의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일관되게 남북한이 서로를 존중하는 '포용적 평화공존', 싸울 필요가 없는 '안정적 평화공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책임있는 평화공존'을 추진하자고 제안하였다. 남북은 물론 미국과 중국이 참가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방향도 제안하였다. 그러나 같은 유엔총회의 연설에서 북한의 김선경 외무성 부상은 한반도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고 안전과 평화가 유지되는 것은 자신들이 보유한 강력한 핵억제력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우리 정부가 자유주의적 평화론을 제기하는 데 반해 북한은 완고한 현실주의적 평화론의 정당성으로 응수하는 양상이 노정되고 있다.

찰스 쿱찬 같은 평화연구자들은 적대적 국가 간에 평화상태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제1단계에서 어느 일방이 절제된 정책을 취할 때, 제2단계 국면에서 상대 측도 호응해야 비로소 공동의 신뢰감과 정체성도 생겨나고 교류와 협력의 창구가 넓어질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현재 남북한의 관계는 제2단계 국면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의 핵능력에만 의존하면서 우리 정부의 평화공존 제안을 무시하는 북한과 어떻게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고, 궁극적인 비핵화의 길에 이를 수 있는가. 동시에 한반도의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강대국 간 질서의 불안정을 관리할 수 있겠는가. 북한이 자신들의 핵능력 고도화 기조를 변경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고, 강대국 간 경쟁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국내적으로는 자강의 태세를 정비하고, 대외적으로는 한미동맹의 현대화와 국제규범을 수호하려는 다자간 안보연대 강화를 추구하는 현실주의 평화론이 불가피한 선택의 길이 되지 않을까 한다. 냉전기의 상황하에서 다각도로 한반도 평화론을 모색하였던 선대 연구자들의 문제의식이 지금 시점에서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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