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포용 강요'도 약탈이다

파이낸셜뉴스
최갑천 금융부장·마켓부문장
최갑천 금융부장·마켓부문장

금융은 해악인가. 결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러나 보수든 진보 정권이든 금융산업을 선보다 악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건 한결같다.

문제는 금융이 자선사업이 아니라는 데 있다. 돈을 빌려주는 순간부터 상환능력과 위험에 따른 가격결정이 작동해야 한다.

현 정부가 내세우는 '포용적 금융'의 취지 자체는 이해한다. 취약계층이 제도권 금융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돕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실제 정부는 올해 햇살론 등 정책서민금융을 3~6% 낮은 금리로 공급했다. 2028년까지 은행권 새희망홀씨 공급 규모도 4조원에서 6조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새희망홀씨는 연소득 5000만원 이하, 신용평점 하위 20%의 저신용자가 대상이다. 정부 시책에 부응해 5대 금융지주도 향후 5년간 약 70조원 규모의 포용금융 확대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지금의 가계부채 상황을 보면 포용과 방만의 경계를 넘나든다. '금융의 공공성'을 우선하다 보니 '금융의 건전성'과 '차주의 상환책임'이 뒷전인 양상이다.

경고음은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은행권의 7월 말 원화대출 연체율은 0.63%로 전월보다 0.07%p 상승했다. 7월 기준으로는 2016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다. 기업대출 연체율도 0.78%로 올랐다. 특히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91%까지 뛰었다.

서민금융의 최전선에 있는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은 더 심각하다. 올해 6월 말 저축은행 연체율은 6.26%로 지난해 말보다 0.22%p 상승했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무려 8.38%에 달했다. 같은 기간 상호금융의 연체율은 5.39%로 지난해 말보다 0.77%p 높아졌고, 기업대출 연체율은 8.03%로 1.20%p 치솟았다.

금융에서 가장 위험한 건 '공짜 점심'이라는 신호다. 돈 빌린 사람이 자신의 신용과 상환능력에 걸맞은 비용을 부담한다는 건 원칙이다. 이 원칙이 약해지면 도덕적 해이가 온다. '어차피 정부가 도와준다' '연체해도 채무조정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품는 악성차주들이 없다고 보는가. 성실하게 빚 갚는 사람에게는 박탈감만 줄 뿐이다.

이는 결국 금융의 가격기능을 훼손한다. 불량차주에게 정상적인 금리를 받지 못하면 금융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대출을 줄이거나 다른 우량차주에게 비용을 떠넘기는 것이다. 전자는 금융소외를 심화시킨다. 후자는 성실한 금융소비자에게 '포용금융의 비용'을 전이시킨다. 어느 쪽이든 해법이 아니다.

특히 정책금융과 민간금융의 역할을 구분해야 한다.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정부 재정과 정책금융기관이 위험을 부담하는 게 맞다. 민간금융은 엄격한 심사와 적정한 가격을 통해 지속 가능한 대출을 제공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민간 금융사가 손실을 순순히 떠안을 리는 없다. 정상적 차주들이 십시일반 이자를 더 내야 할 것이다.

포용금융의 목표도 방향을 틀어야 한다. '대출을 많이 해주는' 양적 방향은 시장 전체에 부담으로 돌아온다. 불량차주가 정상적 금융시장으로 돌아오도록 만드는 것이 진짜 포용이다. 돈을 빌려주되 상환능력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 실패한 사람에게는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도 맞다. 반복적인 부실에는 공정한 책임을 묻는 정교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부는 포용금융의 대척점을 '약탈적 금융'으로 규정한다. 금융사가 소비자의 취약성을 이용해 폭리를 챙기는 건 약탈이다. 하지만 정치권력이 금융사의 자본과 건전성을 희생시키는 정책을 펴는 것도 약탈적 금융이 될 수 있다. 은행마다 중저신용자 대출을 경쟁적으로 늘리게 하고 성과를 공개토록 하는 건 금융에 대한 죄악시가 깔려 있어서다. 금융의 원칙을 회복하는 정책을 주문한다. 상환능력에는 책임을, 실패에는 재기의 기회를, 취약계층에는 두터운 안전망을 줘야 한다. 그리고 금융사에는 건전성 원칙을 분명히 적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속 가능한 포용금융이다.

[email protected] 최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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