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에 '넬슨 만델라의 변호인' 남아공 나비 필라이(종합)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에 맞서 넬슨 만델라를 변호했던 인권변호사 나바네템 '나비' 필라이(85)가 2026년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반인종차별 투쟁에서 출발해 국제 법정에서 전쟁범죄와 집단학살의 책임을 묻는 데 평생을 바친 국제법 전문가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9일(현지시간) 필라이를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고 "평화와 국제법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수상 이유로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필라이에 대해 "탁월한 용기와 청렴함으로 더 포괄적인 세계 법질서를 향한 길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집단학살에 책임을 묻는 국제 사법체계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노벨위원회는 국제법 체계가 정치적 압력에 직면한 현 상황을 강조했다. 힘의 논리가 법적 질서를 밀어내는 상황에서 법치를 통한 책임 규명과 비폭력적 분쟁 해결이 평화의 핵심이라는 메시지를 이번 수상자 선정을 통해 던진 셈이다.
1941년 남아공 더반의 인도계 타밀 가정에서 태어난 필라이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아래에서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1967년 나탈주에서 여성 최초로 자신의 법률사무소를 열고 넬슨 만델라를 비롯해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선 정치범과 인권운동가들을 변호했다.
당시 필라이는 정치범들에 대한 고문과 독방 수감 실태를 폭로하고 수감자들의 변호인 접견권을 확보하는 데 힘썼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1982년 법학석사(LL.M.), 1988년 법학박사(S.J.D.) 학위를 취득했다.
1995년에는 남아공 고등법원 최초의 비백인 여성 판사로 발탁되면서 법조계에서도 새로운 길을 열었다. 같은 해 유엔 총회에서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 재판관으로 선출돼 2003년까지 활동했으며, 1999년부터 4년간 재판소장을 맡았다.
필라이의 국제형사법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업적 가운데 하나는 르완다 집단학살의 책임을 물은 '장폴 아카예수 사건'이다. 이 판결은 국제재판소가 성폭행과 성폭력을 반인도적 범죄이자 집단학살의 수단으로 인정한 최초의 사례로, 필라이는 이 같은 법리를 확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이후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을 지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는 유엔 인권최고대표를 맡아 세계 각지의 인권침해와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 규명을 촉구했다.
필라이의 활동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그는 2021년 구성된 '팔레스타인 점령지와 이스라엘에 관한 유엔 독립 국제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한 국제법 위반 여부를 조사했다.
조사위원회는 지난해 9월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저질렀다고 결론 내렸다. 집단 구성원 살해와 심각한 신체·정신적 위해, 집단의 물리적 파괴를 초래할 생활 조건 조성, 출생 방해 등 집단학살협약에 규정된 5가지 행위 가운데 4가지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이스라엘은 이 같은 조사위 결론을 강하게 부인했다. 조사 결과가 편향되고 왜곡됐으며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필라이는 미얀마 로힝야족 집단학살 의혹을 다루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사건에도 참여하고 있다. 감비아가 2019년 미얀마를 집단학살협약 위반 혐의로 제소하면서 지명한 특별재판관으로 현재도 해당 사건 심리에 참여하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필라이를 "국제 법치주의 질서 확립의 강력한 원동력"으로 평가했다. 사법적 엄격함과 독립성, 개인적 청렴함과 용기를 바탕으로 국가와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폭력과 분쟁의 피해자들에게 정의에 대한 희망을 줬다고 강조했다.
위원회는 "국제법은 더 이상 평화와 안보를 위한 보완수단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며 법치주의가 평화를 보장하고 분쟁을 비폭력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구축한 국제질서의 토대라고 밝혔다.
올해 노벨평화상 상금은 지난해보다 100만 크로나 오른 12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6억 2000만 원)다. 시상식은 알프레트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
지난해 노벨평화상은 베네수엘라의 민주적 권리를 증진하고 독재체제에서 민주주의로의 평화적 전환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에게 돌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