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기자의 눈] 힘의 논리 맞선 법의 방패…트럼프 시대와 나비 필라이

뉴스1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토록 집착하던 노벨평화상은 올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인권변호사 나바네템 '나비' 필라이에게 돌아갔다. 필라이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 철폐부터 전 세계 곳곳에서 자행된 전쟁범죄의 처벌까지 국제 사법 정의에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의 이번 선택은 한 인권변호사가 평생 걸어온 길을 조명하는 동시에, 흔들리는 국제질서의 근간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엄중한 선언에 가까웠다.

노벨위원회는 수상 배경으로 국제사회가 수많은 전쟁과 분쟁을 포함한 실존적 위기에 놓여 있음을 언급하며, 국제법은 평화와 안보를 뒷받침하는 보조 수단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전쟁이 늘고 국제기구와 법관을 향한 정치적 압박이 커지는 현실을 겨냥한 메시지다.

이번 수상을 더욱 의미심장하게 만드는 건 국제 정세의 거대한 흐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창하는 '미국 우선주의'와 힘의 논리는 규범과 협력에 기반한 외교 질서를 끊임없이 흔들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필라이의 모국인 남아공을 향해 근거 없는 '백인 박해' 프레임을 들이밀었다.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을 면전 조롱하는가 하면 G20에서 남아공을 사실상 배제하기도 했다.

필라이의 발자취는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 국제형사재판소(ICC), 그리고 최근 팔레스타인 점령지 유엔 독립 국제조사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반인도적 범죄와 학살에 대한 책임 묻기'를 향해 있었다.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법 앞에서 국가와 지도자가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원칙이자 신조였다.

국제 사법기관과 법관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거세지는 시점에 전직 ICC 재판관을 평화상 수상자로 선택한 건, 어떠한 권력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사법적 독립성과 법치주의의 원칙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굳이 특정 인물을 언급하지 않고도 법치주의 위에 군림하려 하는 지도자들의 행보에 정면으로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필라이는 독일 뉘른베르크 국제법 포럼에 참석하던 중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박수를 조금만 더 치면 트럼프와 상을 나눠 가질지도 모른다"고 농담하며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물론 국제법이 존재한다고 강압 행위나 국제 분쟁이 저절로 멈추는 건 아니다. 다만 필라이는 제 삶으로 증명했을 뿐이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범죄에 책임을 묻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한, 법은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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