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덮친 中 전동화 공습… 베트남 '빈패스트'로 안방 지켜
아세안 모빌리티 패권 재편
전동화 차량 시장 2년새 2배 급증
BYD 등 中브랜드 상위권 장악
빈패스트, 아세안 6개국 판매 1위
현지 구매력 맞춤 모델로 승부
충전·금융 등 사후관리 중요해져
【파이낸셜뉴스 하노이(베트남)=김준석 특파원】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장악해온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자동차 시장이 전동화 차량 위주로 전환되면서 중국 브랜드들이 가격 경쟁력과 다양한 차종을 앞세워 전통적인 강자인 일본차와 한국차를 압도하고 있다. 전동화 차량에는 순수전기차(BEV)뿐 아니라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하이브리드차(HEV) 등이 포함된다. 아세안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은 2026년 상반기 15.7%로 높아졌고, 전동화 차량 시장에서는 47%에 달했다. 베트남에서는 자국 브랜드 빈패스트가 판매 1위에 오르면서 전통적 강자이던 도요타를 점유율에서 3배 앞서고 있다.
11일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아세안-6 자동차 시장 스냅샷'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아세안 6개국의 전체 자동차 판매량은 약 176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11.1% 증가했다. 이 가운데 전동화 차량(xEV)은 약 55만7000대가 팔려 전체 판매량의 32%를 차지했다. 2024년 상반기 14%에서 올해 상반기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특히, PHEV를 비롯한 전동화 차량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실제로 지난 1~8월 전년 동기 대비 베트남은 73.9%, 인도네시아는 54.6% 증가했으며, 말레이시아(121.6%), 필리핀(199.5%), 미얀마(208.7%) 등은 세 자릿수의 폭발적인 급증세를 기록했다.
■日시대 가고 中시대 오나
중국 브랜드의 약진은 전동화 차량 시장에서 두드러진다. PwC에 따르면 아세안 6개국(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폴) 전동화 차량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의 점유율은 2024년 상반기 35%에서 2025년 상반기 43%, 올해 상반기 47%로 상승했다. 반면 일본 브랜드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34%에서 19%로 낮아졌다.
중국 완성차 업체들의 아세안 시장 전체 차량 시장 점유율은 2025년 약 11%에서 올해 상반기 15.7%로 상승했다.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는 여전히 일본 업체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으나, 전동화 시장에서는 중국 브랜드가 보급형 전기차부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앞세워 빠르게 주도권을 넓히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이번 전동화 전환을 내연기관차 중심의 일본 을 넘어설 절호의 기회로 삼고, 역내 생산기지 구축 등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브랜드별 전동화 차량 판매 순위에서도 뚜렷한 지각변동이 감지된다. 올해 상반기 아세안 6개국 시장에서는 빈패스트가 1위, 중국 BYD가 2위, 일본 도요타가 3위를 차지했다.
BYD 등 중국 브랜드들이 상위권을 장악한 반면,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전동화 차량 판매 순위에서 15위권 내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현대차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인도네시아 공장(HMMI)과 베트남 공장(HTMV) 가동률은 각각 38.5%, 44.7%에 그쳤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5.4%p, 0.4%p 하락한 수치다. 미주 지역을 비롯해 브라질, 인도 공장들이 100%에 육박하는 가동률을 기록 중인 것과 대조를 이루며 아세안 시장에서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빈패스트, 아세안 브랜드 판매량 1위
베트남은 중국 브랜드 공세가 거센 가운데도 빈패스트가 자국 시장인 베트남 시장에서 강력한 입지를 유지하며 아세안 전동화 시장의 주요 사업자로 성장했다. 빈패스트는 올해 상반기 약 11만6000대를 인도하며 베트남 자동차 시장의 약 40%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도요타의 판매량은 3만5410대로 점유율 12.2%를 기록하며 격차를 넓히고 있다.
빈패스트는 VF3와 VF5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모델로 소비자층을 넓혔고, 상업용 수요를 겨냥해 내놓은 리모 그린도 판매를 이끌었다. 전기차를 앞세운 현지 브랜드가 자국 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넓히며 기존 완성차 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중국 브랜드도 올해를 기점으로 베트남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PwC는 중국이 베트남의 자동차 수입액 기준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주요 수입국이라고 분석했다.
베트남은 글로벌 업체들의 진출 움직임도 이어지면서 전동화 시장의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테슬라는 지난 9월 베트남 현지 법인을 설립했지만 구체적인 판매 개시 시점이나 사업 계획은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면서 향후 더 많은 글로벌 업체들의 진입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차만 팔아서는…" 충전·금융 등 사후관리 중요
아세안 전동화 시장의 경쟁은 차량 가격과 성능을 넘어 충전 인프라와 금융, 사후관리로 확대되고 있다. 전기차를 구매하더라도 충전이 불편하거나 정비 서비스가 부족하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조사들이 판매량 확대를 넘어 차량을 구매하고 운행하는 전 과정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빈패스트는 차량 판매와 충전 기반을 결합한 사례다. PwC는 빈패스트가 베트남에서 전국 약 15만개의 충전 포트를 갖춘 충전 생태계를 구축했다고 분석했다. 현지 시장에 맞춘 차종과 충전 인프라를 함께 확보한 것이 빈패스트의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평가다.
주변국들도 산업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배터리 생산을 포함한 통합 전기차 산업 기반 조성을 추진하고 있으며, 태국은 전기차를 주거용 태양광 발전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에너지 산업과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전동화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차량 판매뿐 아니라 생산·부품·에너지·서비스를 아우르는 기반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PwC 베트남의 모하메드 무다서 파트너는 "과거에는 전기차를 사는 것이 일종의 '과시'였다면, 이제는 매우 '실용적인 선택'으로 바뀌었다"며 "앞으로는 단순히 차를 많이 파는 제조사가 아니라 충전 네트워크, 금융 옵션, 사후관리(AS) 신뢰도를 구축하는 기업이 최종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전동화 전환에 대한 대응 속도가 향후 아세안 시장 주도권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기아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아세안 소비자의 구매력에 맞춘 보급형 전기차와 소형 SUV를 조기에 투입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자동차 품질과 가격뿐만 아니라 현지 충전 사업자(CPO)와의 제휴로 네트워크 접근성을 높이고, 전용 할부·리스 같은 맞춤형 금융 프로그램을 패키지로 묶어 전동화 생태계 주도권 경쟁에 가속도를 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