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사설] 광주 팹 속도전 최태원, 인프라도 함께 발맞춰야

파이낸셜뉴스

전력·용수 늦어져도 선착공 의지
부지조성, 시설구축 총력전 펴야

최태원(가운데) SK그룹 회장과 민형배(왼쪽)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이 9일 오후 전남광주 서구 벽진동 주변 광주군공항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예정지에서 반도체팹 조성 브리핑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태원(가운데) SK그룹 회장과 민형배(왼쪽)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이 9일 오후 전남광주 서구 벽진동 주변 광주군공항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예정지에서 반도체팹 조성 브리핑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을 최대한 서두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최 회장은 지난 9일 광주 군공항의 반도체 예정 부지를 찾아 전력과 용수 공급이 늦어져도 팹 공사부터 시작할 수 있다며 속도전을 강조했다. 광주 투자 규모를 당초 계획보다 더 늘릴 가능성도 언급했다. SK하이닉스는 광주에 400조원을 투자해 팹 2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최 회장은 광주 클러스터를 용인의 3분의 2 규모로 계획하고 있지만 여건이 되면 "건설비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이 정부에 등 떠밀려 광주 반도체 투자를 떠맡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구심을 불식시킬 만한 발언이다. 지난 6월 정부의 광주 클러스터 사업 발표 이후 회의론은 만만치 않았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선 야당을 중심으로 사업 타당성에 대한 의문도 쏟아졌다. 광주 현지에서도 사업이 흐지부지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가운데 기업 총수가 직접 현장을 찾아 파격 발언을 한 것은 이런 우려를 덜어주고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려는 행보로 볼 수 있다.

최 회장이 빠른 속도와 더 많은 투자를 언급한 이면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현장은 폭증하는 첨단 메모리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3·4분기 영업이익이 100조원을 돌파한 것도 이런 초호황을 보여준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맹주인 SK하이닉스로선 생산능력을 얼마나 빨리 확충하느냐에 미래의 이익과 시장 주도권이 달려 있다. 주문이 쌓여도 이를 감당할 공장이 없다면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다. 반도체 공장은 부지 조성부터 설비 구축, 실제 가동까지 수년이 걸린다. 수요가 폭발한 뒤 공장을 짓기 시작하면 이미 늦다. 용인의 건설 일정을 12년이나 앞당기고도 광주에 새 공장을 서둘러 짓겠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다.

관건은 국가 기반시설이 기업의 속도전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팹 4기에는 전력 6.3GW와 하루 65만t의 용수가 필요하다. 광주시는 2028년 말까지 이 가운데 전력 3.1GW와 용수 15만t을 먼저 공급해 2030년 6월 첫 양산을 맞추겠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나머지 물량이 언제 들어오느냐다. 초기 공급분 이후 일정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전력과 용수가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공장을 지어놓고도 가동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광주 군공항 이전과 부지 조성도 풀어야 할 과제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산업 현장의 긴박감에 부응하지 못하는 현실도 우려스럽다. 정부는 당초 10월까지 마련하겠다던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정부안을 원전 역할에 대한 공론화를 이유로 연말까지 미뤘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산업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대규모 투자계획이 잇따르는데도 장기 전력 공급의 청사진 마련이 하세월인 것이다.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에 대한 충분한 논의는 필요하다. 그러나 공론화가 정책 결정을 마냥 늦추는 이유가 돼선 안 된다.

송전망 구축도 발등의 불이다. 발전설비가 충분해도 생산한 전기를 산업 현장까지 보낼 전력망이 부족하면 소용없다. 정부는 사업별 실제 공사 기간을 고려하면 일정에 차질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주민 반발과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감안하면 안심할 일이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전력·용수 공급 계획을 다시 점검하고 범정부 차원의 총력 대응에 나서야 한다. 기업은 미래를 앞당기겠다는데 국가 인프라가 과거의 속도에 머물러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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