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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 검증 안됐는데… 히트펌프 350만대 보급 서두르는 정부

이유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따뜻한 제주에 실증 95% 몰려
강원 등 한랭지역 실증 병행해야
데이터 없이 내년 물량 5배 늘려
보조금 중심 확대 방식에도 우려

성능 검증 안됐는데… 히트펌프 350만대 보급 서두르는 정부

정부가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를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히트펌프가 한파에도 제 성능을 내는지 확인 할 수 있는 국내 보급사업 데이터 없이 유럽 사례 등을 근거로 보급 확대가 시작된다. 올해 실증 물량의 95%는 겨울이 상대적으로 따뜻한 제주에 몰렸고, 첫 겨울 성적표가 나오기도 전에 내년 물량은 5배 수준으로 늘어난다.

정부의 한국형 녹색대전환(K-GX) 전략에 따르면 현재 30만대 수준인 히트펌프 보급은 10년 안에 10배 넘게 확대된다.

문제는 실증이 따뜻한 지역에 쏠렸다는 점이다. 12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이 기후에너지환경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주택용 히트펌프 보급 2580가구 가운데 2460가구가 제주에 있다. 전남은 100가구, 경남은 20가구에 그친다.

정부는 이들 가구의 난방비 절감률과 효율을 측정해 확대 근거로 삼을 계획이다. 지난 겨울 제주의 평균기온은 8.1도로 수도권(영하 0.4도)보다 8.5도가 높았다.

추위는 공기열 히트펌프의 약점이다. 바깥 공기에서 열을 끌어오는 방식이라 기온이 낮을수록 효율이 떨어진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외기온도 5도 이하에서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며 "영하 1도 조건의 시험을 따로 해야 한다"고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제주에서 얻은 절감률을 강원이나 경기 북부에 그대로 적용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확대 속도는 당초 계획보다 빠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올해 성과를 검토한 뒤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내년 예산안에 이미 1만2083대(859억원)가 잡혔다. 올해 2617대(157억원)의 4.6배(5.4배)에 해당한다. 올해 설치한 설비의 겨울 성적은 내년 봄에나 나온다.

성능 데이터가 없다는 건 전력 수요를 예측할 근거가 없다는 의미다. 역대 겨울 최대전력은 2022년 12월의 94.5GW다. 히트펌프는 효율이 가장 떨어지는 한파 시기에, 전력수요가 가장 몰리는 시간에 제일 세게 돌아간다. 학계에서는 히트펌프 350만대와 전기차 400만대가 함께 보급되면 겨울 피크가 최대 20GW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해가 짧은 겨울에는 태양광 출력이 낮아 늘어난 피크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확대 전에 데이터부터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주의 결과는 '온난지역 실증'으로 구분하고, 강원·경기 북부 등 '한랭지역 실증'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주택 유형과 단열 수준별로 성과를 나눠 측정해야 전국 보급의 근거가 된다. 지원 제품도 연평균 효율이 아니라 영하 7도, 영하 15도에서의 난방능력과 소비전력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피크를 분산하는 운전도 대안으로 꼽힌다. 가정용 히트펌프 온수기 연구에서는 수요에 맞춰 바로 가동하면 최대전력이 11.7% 늘지만 축열 방식으로 운전하면 피크가 유지됐다. 정부가 올해 4월 히트펌프 설치 주택에 허용한 계시별 요금 선택이 실제로 피크 시간의 가동을 줄이는 지도 함께 검증해야 한다.

보조금 중심의 확대 방식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도 있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350만대 보급에 꽂혀 보조금을 풀면 누구에게 혜택이 돌아가겠느냐"며 "히트펌프는 아직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 단계"라고 짚었다. 이어 "경제성이 없는 것을 보조금으로 완화해주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급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라고 부연했다.

[email protected]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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