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지휘자와 보이지 않는 손[박혜진의 꿈꾸는 오페라]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박혜진 국립오페라단 단장
박혜진 국립오페라단 단장

오페라 무대에서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모든 소리를 듣고, 서로 다른 악기들의 숨결을 하나의 음악으로 엮어낸다. 그의 팔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현악기의 떨림과 관악기의 호흡, 성악가의 목소리가 비로소 하나의 장면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악보 밖에서 누군가 그 팔을 붙잡고 다른 음표를 강요한다면, 음악은 더 이상 자신의 길을 갈 수 없다.

무대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조명을 조절하고 장면의 전환을 돕는 손이다. 그러나 그 손이 어느 순간 지휘자의 팔을 끌어내리고, 이미 완성된 장면의 호흡까지 바꾸려 한다면 무대는 서서히 빛을 잃는다. 예술을 위해 마련돼야 할 행정이 예술 위에 군림할 때, 지원은 간섭으로 바뀌고 질서는 통제가 된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서 타미노는 침묵과 불, 물의 시련을 통과한다. 그 여정은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과정이 아니라, 세상의 소음을 내려놓고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는 과정이다. 문화예술 행정도 그러해야 한다. 행정은 예술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제 힘을 다할 수 있도록 무대를 마련해야 한다.

오페라는 몇 줄의 계획서와 숫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한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수많은 리허설의 밤, 성악가의 호흡, 제작진의 땀 그리고 오랜 시간 축적된 예술적 감각이 필요하다. 예술적으로 책임을 지고 평생 오페라의 길을 걸어온 예술 책임자와 기획자의 결정은 단순한 개인적 취향이 아니다. 그것은 작품과 무대, 예술가와 관객 앞에서 감당해 온 책임의 결과다.

물론 예술적 결정을 맡은 사람에게는 자신의 판단을 설명할 의무가 있고, 조직과 재정에 책임질 의무가 있다. 그러나 설명과 검증은 간섭과 통제가 돼서는 안 된다. 오페라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 행정이 공무원의 잣대만으로 예술을 평가해서도 안 된다. 절차와 예산의 적정성은 행정이 살필 영역이지만, 작품의 깊이와 무대의 가능성까지 서류와 지표만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 알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알지 못하면서 결정하려는 태도는 위험하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 부인은 남편의 통제와 의심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는다. 그녀의 저항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무너진 관계의 조화를 회복하기 위한 용기다. 예술적 자율성도 방임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을 전제로 한 자유이며, 오랜 경험과 전문성에 대한 존중이다.

행정은 질문할 수 있지만 지휘할 수는 없다. 지원할 수 있지만 창작자의 손을 대신 움직일 수는 없다. 예술을 책임지는 사람들의 역할은 예술가의 목소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목소리가 가장 멀리 울려 퍼지도록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행정은 예술의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곁에 서야 한다.

박혜진 국립오페라단 단장


#오페라 #지휘자 #오케스트라 #악기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