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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모두를 위한 디자인 레시피

파이낸셜뉴스
김현선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
김현선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

좋은 도시를 만드는 데도 레시피가 있을까. 아름다운 건축물에 문화와 기술을 더하고, 사람의 이야기를 섞으면 좋은 도시가 완성될까. 빠뜨려서는 안 될 재료가 하나 있다. 바로 배려다. 휠체어가 걸림 없이 지나가는 길, 노인이 편히 앉는 의자, 아이의 눈높이에서도 읽히는 안내판. 작지만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는 디자인이다. 도시사상가 제인 제이콥스는 말했다. "도시는 모두가 함께 만들 때 비로소 모두를 위한 장소가 된다." 아름다운 도시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라는 질문이다.

조선의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에는 놀라운 디자인 철학이 숨어 있다. 오목한 그릇에 드리운 그림자로 시간을 읽고, 글을 모르는 백성도 알 수 있도록 시각을 그림으로 나타냈다. 시간을 알 권리를 모두에게 나누어준 것이다. 지난해 한국디자인단체총연합회 창립 30주년을 맞아 나는 디총 회장으로서 디자인계의 의견을 모아 앙부일구가 설치된 날인 11월 2일을 '디자인의 날'로 제정 선포하고 제1회 디자인의날 행사를 하였다. 올해 디자인의날 두 번째 해를 맞는다. 600여년 전의 작은 해시계가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디자인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디자인이 도시를 바꾼 사례는 세계 곳곳에 있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은 옛 공장과 창고를 창작의 무대로 바꾸었다. 더치디자인위크에는 수많은 디자이너와 방문객이 모여 미래의 생활을 실험한다. 영국 런던디자인페스티벌은 박물관을 넘어 거리와 상점, 골목까지 축제의 무대로 만든다. 디자인이 사람을 모으고, 발걸음이 지역의 활력으로 이어진다. 서울도 다르지 않다. 청계천에 물길이 돌아오고, 광화문광장에 사람들이 머물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세계의 창의성이 모인다. 도시의 변화는 건축물로 시작할 수 있지만, 그 가치는 시민의 경험 속에서 완성된다.

14일부터 서울디자인위크가 열린다. 올해의 주제는 'The Design Recipe'. DDP에서 시작해 성수와 서울의 골목으로 이어지는 디자인 축제다. 젊은 디자이너의 첫 작품이 누군가의 일상이 되고, 오래된 장인의 기술이 새로운 브랜드로 태어난다. DDP의 유려한 곡선보다 그 안에서 꿈을 발견하는 아이의 호기심, 청년의 도전, 시민의 미소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비로소 건축은 살아 있는 장소가 된다. 디자인은 완성된 물건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변화다. DDP는 그 변화가 도시의 일상으로 번져가는 출발점이다.

도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시도는 때로 낯설고 논쟁을 부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남는 것은 그 공간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기억이다. 좋은 디자인의 레시피에도 정답은 없다. 다만 빼놓을 수 없는 재료가 있다. 사람에 대한 존중, 미래를 향한 상상, 그리고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앙부일구가 햇빛을 나누어 모두에게 시간을 알려주었듯, 오늘의 디자인은 모두에게 더 나은 삶의 기회를 나누어야 한다. 좋은 디자인은 눈을 즐겁게 한다. 더 좋은 디자인은 삶을 편안하게 한다. 위대한 디자인은 소외된 사람에게도 내일을 꿈꿀 자리를 내어준다.

우리가 디자인해야 할 것은 결국 물건이 아니라 사람의 내일이다.

김현선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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