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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視角] 초지능 띄우는 트럼프의 셈법

파이낸셜뉴스
조창원 논설위원
조창원 논설위원

인공지능(AI)은 입에 착 달라붙을 만큼 일상 용어가 됐다. 그런데 AI 용어를 쓰면 미국의 미움을 살지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AI 대신 초지능(Super Intelligence), 즉 SI로 바꿔 부르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AI 용어를 쓰면 백악관의 '적'으로 간주한다니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다. SI로 바꾸려는 의도는 뭘까.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종합하면 AI 투자를 더욱 늘려 경쟁국인 중국을 누르고 미국 주도의 산업패권을 장악하려는 구상과 맞닿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술을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려고 '언어권력'을 행사하는 셈이다. 과연 기술의 이름을 바꾼다고 미국의 기술패권에 도움이 될까.

우선 SI의 실체부터 살펴보자. 초지능은 철학자 닉 보스트롬이 2014년 저서 '슈퍼인텔리전스(Superintelligence)'에서 이미 사용한 용어다. 일반적으로 초지능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광범위하게 뛰어넘는 지능을 뜻한다. 이 지점에서 SI 개념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 우리 시대에 AI 기술 구현과 활용은 초지능 단계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더구나 초지능은 기술이 낳을 위험과 인간의 통제 상실을 경고한다. AI 산업 부흥을 위해 SI를 내세우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과 초지능이 담고 있는 경고성 메시지는 충돌한다.

백번 양보해 AI를 SI로 이름 갈이 하면 미국의 기술패권에 도움이 될까. 초지능은 인간을 초월하는 지능의 능력을 뜻할 뿐 어느 국가의 소유나 주도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국이 개발해도 SI이고, 중국이 개발해도 SI다. 초지능이란 단어는 특정 국가의 기술적 우위를 지지하는 색깔이 없다. 이름을 바꾼다고 미국의 기술패권에 유리한 환경이 마련되는 건 아니란 얘기다.

명칭 변경이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지금 미국 내에 AI를 둘러싼 두 가지 반발 여론이 있다. AI 데이터센터 건설에 대한 반대 여론이 워낙 강하다. 과도한 전력과 용수 소비, 일자리 창출 효과에 대한 의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AI 발전 속도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기술에 대한 인간의 통제력 상실과 일자리 대체에 대한 우려가 AI 속도조절론에 힘을 싣고 있다. 이런 부정적 여론은 트럼프 행정부가 고대하는 AI 투자심리에 찬물을 끼얹는다. 이에 '인공적'이라는 표현 대신 '초월적' 의미를 앞세운 기술에 우호적인 여론전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이름을 바꾼다고 줄어들지 않는다. 일자리 상실에 대한 불안이나 AI의 통제 가능성에 관한 우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인간을 뛰어넘는 '초지능'이라는 표현은 기술에 대한 경계심만 키울 수 있다.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중국 진나라 때 권신 조고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주장한 일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다. 조고는 신하들에게 사슴인지 말인지 묻고, 자신에게 복종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려냈다. 사물의 실체보다 권력자의 말에 길들게 하는 게 목적이다. 이처럼 언어권력은 행정적 권한과 결합할 때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한다. 이미 미국의 일부 빅테크 경영진은 SI라는 용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기술과 시장이 필요한 우리나라 기업들도 실리를 고려한다면 SI를 선택하는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언어에 대한 순응이 개념에 대한 동의를 뜻하지 않는다. SI 명칭에 대한 순응이 국제적 공감대를 얻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SI가 보편적 개념으로 설득력을 얻으려면 '모두의 SI'여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가 내세우는 SI는 미국의 산업패권과 중국 견제라는 국가적 이해관계가 짙게 배어 있다. 이름은 SI이지만 실상은 ASI(American Super Intelligence), 미국 주도의 초지능에 가깝다. 모두의 SI를 표방하면서 미국의 ASI를 추구하는 것이 트럼프 언어권력의 역설이다.

[email protected] 조창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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