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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주민 없지만 日 영토라는 '북방영토' [박종원의 그때 여기]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러시아, 사할린에서 日 특파원 간첩 혐의로 전격 체포
원주민 살던 사할린, 몽골 침략으로 원나라 편입
이후 명·청 영토였으나 러시아 및 日 정착민 급증
日, 1855년 시모다 조약으로 쿠릴열도 남부 4개섬 확보
이후 러일전쟁 거치면서 남사할린까지 얻어
러시아, 2차 대전 이후 사할린 전체와 쿠릴열도 점령
약 40만명 넘던 일본인 모두 추방, 현재 일본계 인구 0.05%
日, 패전으로 해외 영토 포기했지만 시모다 조약 강조
쿠릴열도 남부 4개섬은 日의 '고유 영토' 주장

14일 러시아에서 공개된 영상에서 러시아 연방안보국(FSB) 요원들이 사할린주에서 일본인 기자 이마이 유키(가운데)를 연행하고 있다.타스연합뉴스
14일 러시아에서 공개된 영상에서 러시아 연방안보국(FSB) 요원들이 사할린주에서 일본인 기자 이마이 유키(가운데)를 연행하고 있다.타스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러시아에서 국내 분야를 전담하는 정보기관인 연방안보국(FSB)는 13일 러시아 사할린주(州), 사할린섬의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한 호텔을 급습했다. 이들은 곧 객실에서 일본 언론이 공식적으로 러시아에 파견한 특파원 가운데 유일하게 사할린에서 활동하던 34세의 이마이 유키 기자(홋카이도신문 소속)를 체포했다. FSB는 이마이가 사할린섬 인근 쿠릴열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동원되거나 지원한 사람들의 숫자를 조사해 일본 당국에 넘기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정말 이마이가 간첩이었다면 그의 임무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할린주에는 그나마 쉽게 정보를 얻어낼 일본계 주민이 전체 인구의 0.0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본 홋카이도에서 가깝게는 약 3.7km, 멀어도 43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곳에는 어째서 일본계 주민들이 이렇게 적은 걸까?

러시아 연해주의 동쪽, 일본 홋카이도 북쪽에 자리 잡은 사할린주는 사할린섬과 쿠릴열도를 포함하고 있으며 전체 면적은 8만7100km²다. 사할린섬만 따지면 7만2492km²로 한국 면적의 약 70%에 달한다. 202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사할린주 인구는 46만6609명으로 이 중 40%가 유즈노사할린스크에 거주하고 있고 90% 이상이 사할린섬에서 산다. 인구의 86.5%는 동슬라브계 백인이다.

사할린섬과 쿠릴열도에는 원래 현지 원주민과 홋카이도에서 넘어온 아이누족이 살고 있었다. 해당 지역이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몽골의 확장 시기였다. 금나라를 무너뜨린 몽골은 계속 동진하여 1264년에 사할린섬을 공격했고, 1308년에는 토착 부족에게 조공을 받는 조건으로 군대를 물렸다. 이후 해당 지역은 원나라의 영토에 속했다가 명나라, 청나라의 영토로 이어졌다. 중국 왕조들은 사할린주 일대를 통치하려 노력했지만 워낙 외진 곳이라 통제가 느슨했다. 그 사이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꾸준히 북상했다. 1800년 초에는 사할린섬 남부에 일본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러시아 제국 역시 청나라의 행정 공백을 틈타 정착지를 넓혔다.

이에 도쿠가와 막부와 러시아 제국은 명목상 주인인 청나라의 동의 없이 1855년에 시모다 조약을 맺고 국경을 확정했다. 당시 양측은 사할린섬을 공동 관리하고, 쿠릴열도 남쪽 4개 섬은 도쿠가와 막부가 갖기로 합의했다.

자료: 뉴시스
자료: 뉴시스

1860년 2차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같은 해 베이징 조약에서 연해주와 사할린섬을 러시아 제국에 넘겼다. 그러나 사힐린섬과 쿠릴열도에는 이미 원주민과 러시아인, 일본인들이 섞여 살고 있었다.

1868년에 메이지유신을 시작한 일본은 1875년에 러시아 제국과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맺어 국경을 다시 정리했다. 당시 일본은 사할린섬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는 대신 쿠릴열도 전체를 일본 영토로 가져왔다. 막부 통치를 마치고 새롭게 탄생한 일본 정부는 러시아 제국과 군사 경쟁을 피하고, 불모지 개척에 자원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명목으로 사할린섬과 쿠릴열도의 나머지를 교환했다.

국경은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다시 바뀌었다. 일본은 1905년 포츠머스조약을 통해 사할린섬의 북위 50도 이남 지역을 가져갔다. 이어 사할린섬 남부를 '가라후토'로 명명하고 '가라후토청'을 세워 관리했다. 1944년 기준으로 가라후토에 거주하던 일본인은 약 39만명이었으며, 쿠릴열도에 살던 일본인 역시 1945년 종전 당시 약 1만8000명으로 추정된다. 당시 일본은 한반도에서도 수만명의 조선인을 강제 징용해 사할린으로 보냈다. 지금도 사할린주 주민의 약 5.3%는 한국계다.

러시아 제국을 이은 옛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말미였던 1945년 8월에 일본을 공격하면서 사할린섬과 쿠릴열도 전부를 차지했다. 옛 소련은 이후 1946년부터 해당 지역의 일본인들을 일본 본토로 강제 추방했다. 그 결과 현재 사할린주에 거주하는 일본계 인구는 사실상 사라졌다.

다만 일본 정부는 사할린주에서 일본인이 사라진 지금도 쿠릴열도 남부 4개 지역(이투루프섬·쿠나시리섬·시코탄섬·하보마이 군도)을 '북방영토'라고 부르며 일본 땅이라고 주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가라후토와 쿠릴열도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본 측은 1855년 시모다 조약 당시 도쿠가와 막부가 북방영토의 영유권을 인정받았다고 주장하며, 해당 지역이 1951년에 포기한 해외 영토가 아닌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입장이다.

[email protected]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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