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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농민 마음 헛짚은 전수조사

파이낸셜뉴스
최용준 경제부
최용준 경제부

"한 글자로 된 것들이 중요해." 세 살 많은 누나가 헤어지자면서 내게 말했다. 눈 펑펑 오는 겨울. 눈꺼풀 안 차가운 것이 흘러드는데 어찌나 뜨거운지. 꿈, 돈, 집이 나보다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한참 빙판길을 걸었다. 10여년이 흘러 같은 말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들었다. 공직생활 20년의 서기관이 말했다. "농업에서 중요한 건 한 글자예요. 쌀, 콩, 밀, 꿀." 나이가 들면 한 글자에서 더 많은 감정을 느끼는가.

긴 글자는 헤아리기 쉽지 않다. 그래서 두렵다. 지난 7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은 더듬었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열일곱 글자를 CTPP로 잘못 말하곤 "말도 어렵다"고 했다. 농지 전수조사도 여섯 글자다. 농지를 뜻하는 '논'과 '밭'은 제각각이다. 농민들은 서로 다르게 농사짓는다. 옆집과 임대차 계약서도 쓰지 않고 밭을 빌려주는 농민에게 처분과 처분명령 차이점은 너무 멀다.

농식품부는 늘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말한다. 한 글자가 대체로 그렇듯 농산물은 반드시 필요하다. 농업이 산업적 관점에서 커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정작 '땅'을 일구는 농민의 절반은 70대 이상인 것이 현실이다. 그들이 평생 만진 '흙'은 조사 대상이 아니라 자산이자, '길' '삶'일 것이다. 반면 CPTPP와 전수조사는 알기 어려운 복잡한 숫자를 던진다. 한 글자와 여러 글자. 정부와 농민, 도시와 농촌의 간극이 농심(農心) 혼란의 정체다.

농식품부는 과거 초과생산된 쌀을 시장격리 후 오래 보관했다가 주정·사료용으로 처분했다. 지난해부터는 햅쌀을 밥쌀로 쓰지 않고 곧바로 가공용으로 보낸다. 오래전 농민도, 농식품부도 쌀을 쌀로 보지 않았다. 쌀은 '땀' '끝' '넋'이었다. 갓 수확한 벼를 '밥'이 아닌 용도로 쓰는 건 꺼림칙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시대 속에서 점점 흐릿해진다지만 대다수 농민과 국민은 여전히 갖고 있다. 농업은 현대화되지만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세심하다. 그는 "처분 안 한다"는 원칙을 발표하며 "전수조사로 그림자 농부들이 이름을 찾았다"고 했다. 정책이 만든 감정의 언어를 '속'깊게 듣기에 메시지가 중요한 상황에서도 덧붙였을 것이다. 그 장점이 이번엔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 말로 흘러가는 농정에서 장관에게 필요한 태도는 개인의 '뜻'일 것이다. 지시 이행보다 최고 전문가의 판단이 중요할 '때'도 있다. 농업의 큰 현안 앞에서 사려 깊음과 용기를 보여달라. 농식품부가 지켜온 '힘'은 거기에 있다.

[email protected] 최용준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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