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때문"이라더니 결국 다리 절단...40대女 덮친 희귀 질환의 정체 [헬스톡]
손발 저림에 뇌·신경 검사만 반복
내성 발톱인 줄 알았던 발가락 이미 '괴사'
[파이낸셜뉴스] 손발 저림과 보행 장애 증상을 호소했으나 정신적 요인과 신경계 질환으로 오진받아 치료 시기를 놓친 영국의 40대 여성이 결국 다리를 절단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단순한 내성 발톱이나 스트레스로 여겼던 증상의 정체는 흡연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희귀 혈관 질환 '버거씨병'이었다.
영국 노팅엄셔 렛퍼드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어머니 다니엘 토마스(40)는 지난해 4월 손발이 찌릿하고 감각이 무뎌지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담당 의사는 뇌 질환을 의심해 그를 신경과 전문의에게 의뢰했다. 혈액 검사와 뇌 MRI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그러나 의료진은 과거 그녀가 겪었던 가정폭력 트라우마에 주목하며, 해당 신경 증상이 정신적 불안과 심리적 요인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증상은 갈수록 악화됐다. 그해 11월, 다니엘은 300m 이상 걸으면 다리에 감각이 사라지고 마치 "다리가 죽어가는 듯한 통증"이 발생한다고 호소했다. 척추 CT 검사에서도 특이 소견이 발견되지 않자, 신경과 의료진은 뇌의 신호 전달 체계 이상으로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 '기능성 신경학적 장애(FND)'라는 진단을 내렸다.
FND는 뇌의 구조적 손상이 없음에도 뇌가 신체 각 부위로 신호를 제대로 주고받지 못해 발생하는 대표적인 '뇌 네트워크 장애'다.
영국 내 환자 수만 최대 12만 명에 달하고 매년 1만 건의 신규 사례가 발생할 정도로 적지 않지만, 대중적 인지도는 매우 낮다. 극심한 스트레스 사건이나 정서적·신체적 외상(두부 손상, 편두통, 수술, 백신 접종 등) 이후 갑작스럽게 증상이 발현되기도 하며, 뇌가 통증이나 위협을 회피하려는 과정에서 신체 반응이 차단되는 현상과 유전적 취약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FND는 전문 물리치료와 인지 왜곡 완화, 심리치료 등을 통해 뇌 신호 체계를 '재훈련'하는 방식으로 치료를 진행하지만, 제때 치료받지 못할 경우 중증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환자의 약 70%는 10년이 지난 후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거나 오히려 악화될 만큼 까다로운 질환이다. 다니엘의 의료진 역시 그녀의 통증과 저림 증상을 이 같은 뇌 신호 오류로 단정 짓고 정작 필요한 혈관 정밀 검사를 배제했다.
같은 달, 발가락 끝에 극심한 통증과 염증이 생기자 피부 관리사로 일하던 다니엘은 단순한 내성 발톱 질환을 의심하고 족부 전문의 진료를 강하게 요청했다.
이듬해 2월 족부 전문의를 만났을 때, 충격적인 결과가 전해졌다. 양말을 벗자마자 마주한 발가락은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이미 괴사(괴저)가 진행된 상태였다. 의료진은 "단순 발톱 문제가 아닌 심각한 하지 혈액 순환 장애"라고 경고하며 동커스터 왕립 병원 혈관 외과로 긴급 이송을 지시했다.
정밀 CT 검사 결과, 양쪽 다리 혈관 곳곳이 혈전(피떡)으로 심하게 막혀 있는 '버거씨병(Buerger's disease·폐쇄성 혈전혈관염)'으로 최종 판정됐다.
버거씨병은 팔과 다리의 말초 혈관에 염증이 생겨 혈관이 좁아지고 혈전이 차올라 말단 조직이 썩어 들어가는 희귀 혈관 질환이다. 의학계에서는 발병 및 악화의 결정적 원인으로 '흡연'을 지목한다.
의료진은 다니엘이 20대부터 하루 5~10개비씩 간헐적으로 피워온 담배가 혈관 질환을 유발하고 악화시켰다고 진단했다.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된 혈전과 2차 감염을 막기 위해, 그녀는 지난 9월 7일 오른쪽 무릎 아래 다리를 절단하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다니엘은 "뇌와 척추 신경 검사에만 매달리지 않고 초기 단계에서 혈관 검사를 한 번이라도 진행했더라면, 진작 금연하고 다리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신경과 의사에게 '혈관 속에 모래가 굴러다니는 것 같다'고 호소했음에도 심리적 문제로 치부됐다"고 토로했다. 현재 그녀는 특수 페달 차량 개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중이다.
전문의들은 버거씨병의 초기 증상이 허리디스크나 말초신경염, 족저근막염 등 흔한 근골격계·신경 질환과 유사해 조기 발견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경고한다.
특히 평소 손끝이나 발끝이 시리고 창백해지면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저림이 지속되거나, 일정 거리를 걸었을 때 종아리와 발에 쥐가 난 듯 극심한 통증이 생겼다가 쉬면 가라앉는 '간헐적 파행증'이 반복된다면 단순 피로나 정신적 스트레스로 넘겨선 안 된다.
나아가 손발 끝의 작은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고 검붉게 변하거나 진물이 나는 등 괴사 조짐이 보인다면 즉시 혈관외과를 찾아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전문의들은 버거씨병의 진행을 막고 사지 절단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은 '완전한 금연'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반 담배는 물론 혈관 수축을 유발하는 전자담배와 간접흡연 역시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email protected] 문영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