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줄이고 커피도 끊었다"…주식 손실에 내수 회복도 흔들리나
코스피 6월 고점 대비 37.8%↓…5700선 밑돌아 자산 감소에 이자 부담까지…가계 씀씀이 압박 소비 줄면 자영업 매출·기업 투자·고용에 부담 상품권·숙박 할인 등 내수 대책 효과 제한 우려
[세종=뉴시스]박광온 기자 = 서울 관악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28)씨는 최근 주식 투자로 손실을 본 뒤 배달음식부터 줄였다. 일주일에 서너 번 시켜 먹던 저녁은 집에서 해결하고, 출근길에 사던 커피도 회사 탕비실 커피로 대신한다. 당분간 큰돈이 드는 쇼핑이나 여행은 미루기로 했다. 월급은 그대로지만 주식 계좌에 모아둔 돈이 줄어든 데다 신용대출 이자도 내야 해 생활비부터 아끼기로 했다. 김씨는 "배달 한 번에 2만원 쓰는 것도 망설여진다. 당분간 꼭 필요한 것만 사려고 한다"고 말했다.
코스피가 한때 9000선을 넘었다가 5700선 아래로 떨어지면서 주식 투자 손실이 가계의 소비 위축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보유자산 가치가 줄어든 데다 대출이자 부담까지 겹치면 외식·쇼핑·여행 등 일상적인 씀씀이부터 줄일 수 있어서다.
가계가 지갑을 닫으면 정부가 재정 지출로 뒷받침해 온 내수 회복세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9000 넘었던 코스피, 넉 달 만에 5700선 아래로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지난 16일 5668.05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보다 113.83포인트(2.05%) 반등했지만 여전히 5700선을 밑돌았다.
코스피는 지난 6월18일 사상 처음 9000선을 돌파한 데 이어 같은 달 22일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인 9114.55까지 올랐다. 그러나 이후 반도체 호황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매도 등이 겹치며 큰 폭의 조정을 받았다.
7월31일에는 하루 만에 17.91% 급등한 6595.45로 마감하며 낙폭 일부를 만회했다. 이후 8월 말 6820.02, 9월 말 6838.04를 기록했다. 급락 이후 반등했지만 8~9월 월말 지수는 모두 6800선에 머물러 6월 고점을 크게 밑돌았다.
이달에는 미국의 금리 상승 우려와 인공지능(AI) 산업의 투자·수익성에 대한 불안이 다시 투자 심리를 짓눌렀다. 특히 미국 물가 지표 충격과 AI 클라우드 기업 코어위브의 부채 부담 우려가 겹친 지난 15일에는 하루에만 7.57% 급락한 5554.22로 마감했다.
◆주식 손실에 생활비부터 줄인다…소비 위축 부르는 '역자산 효과'
주가 하락의 충격은 투자자들의 일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최모(31)씨는 최근 주식 계좌 대신 카드 사용 내역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었다. 신용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했지만 손실이 커지면서 생활비부터 줄이기로 했다.
그는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먹고 싶은 음식보다 가격부터 확인한다. 주식 계좌에 찍힌 손실을 당장 되돌릴 수는 없는 데다 매달 대출이자도 내야 해 하루에 쓰는 돈이라도 아끼려는 것이다.
최씨는 "주식으로 잃은 돈을 생각하면 커피 몇 잔 아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이자는 매달 나가니 생활비라도 줄여야겠더라"고 했다.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주식투자자들이 오늘부터 할 일'이라는 제목의 생활비 절약 이미지도 공유되고 있다. 배달앱을 지우고 불필요한 전기 사용을 줄이라는 내용이다.
찬물 샤워나 끼니 거르기처럼 과장된 항목도 담겨 있어 투자 손실 이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상황을 풍자했다.
◆주식 손실에 지갑 닫는 '역자산 효과'…내수에도 부담
이처럼 가계가 지출을 줄이면 음식점과 소매점 등 내수 업종의 매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매출 부진이 길어져 자영업자와 기업이 고용이나 투자를 줄이면 다시 가계 소득과 소비에 부담을 주는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려도 기대한 만큼 내수가 살아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정부는 그동안 지역사랑상품권·온누리상품권 할인 확대와 숙박·공연 할인쿠폰 등을 통해 전통시장과 지역 상권의 소비를 늘리고 국내 여행을 유도해 왔다. 지난달 추석 대책에도 숙박쿠폰 8만장과 공연관람 할인권 22만장 배포 등을 담았다.
그러나 주식 투자 손실과 대출이자 부담으로 가계가 외식·쇼핑·여행부터 줄이면 이런 내수 대책의 효과도 제한될 수 있다.
구매 비용을 낮춰 소비를 유도하더라도 가계가 지출 자체를 꺼리면 전통시장과 음식점, 숙박업소 등의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소비가 두 달 연속 줄어드는 등 내수 회복세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물건을 얼마나 사는지를 보여주는 8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1.8% 감소해 7월(-2.6%)에 이어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품목별로는 승용차·가전제품 등 오래 쓰는 물건인 내구재 판매가 전월보다 4.5% 줄었다. 음식료품·차량연료 등 쓰면 없어지는 비내구재 판매도 1.6% 감소했다. 반면 의복 등 준내구재 판매는 0.4% 증가에 그쳤다.
판매처별로도 감소한 곳이 많았다. 면세점 판매가 11.5% 줄었고, 승용차·연료소매점(-6.9%), 백화점(-6.4%), 대형마트(-5.9%), 편의점(-0.9%)도 감소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주가가 떨어지면 소득이 그대로여도 자산이 줄었다는 생각에 소비를 줄일 수 있다. 대출이자 부담까지 겹치면 이런 경향이 더 강해질 수 있고, 자영업자의 매출과 기업의 투자·고용에도 영향을 줘 내수 회복을 더디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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