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갈 7년 늦췄다"고 했던 국민연금의 182조 손실
시장 떠받치려다 리밸런싱 때 놓쳐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원칙 세워야
국민연금이 보유한 상장주식 평가액이 석 달여 만에 무려 182조원가량 줄었다. 지난 6월 말 515조9293억원에서 10월 15일 333조5330억원으로 줄어 35.3%나 감소했다. 특정 대형주에 손실이 집중되고 리밸런싱(자산 재조정) 시점을 놓쳤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체계를 전반적으로 점검할 필요성이 커졌다.
물론 평가액 감소는 손실 확정을 뜻하지 않는다. 앞으로 손실이 줄어들 수도 있지만 알 수 없다. 국민연금의 투자손실은 곧 국민의 손실로 이어진다. 뼈아픈 대목은 국민연금이 리밸런싱 시점을 놓쳤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1월 국내 주식 비중의 연말 목표치를 14.4%에서 14.9%로 조정하면서 리밸런싱을 미뤘다.
문제는 지난 5월 국내 주식 비중 목표를 20.8%로 한번 더 올린 것이다. 팔기보다 비중을 더 높임으로써 시장을 떠받치는 역할에 더 치중했다. 당시 정부는 국민연금 수익률이 커지자 "연금고갈 시점은 2071년인데 7년 정도 더 늦춰진 것"이라고 자랑하며 자신만만해 했다. 시장에서는 주가가 하락할 경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우려가 터져 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때 리밸런싱을 시작해 수익을 확정해야 했다. 기관이든 개인이든 주식은 수익이 발생한 고점에서 팔고 저점에서 매수하는 게 원칙이다. 누구도 정확한 고점을 알기 어렵기에 일정한 수익률에 이르면 매도하고, 때를 기다려 재매수해야 한다. 당시 일부라도 매도했으면 지금 저가매수하며 폭락장에서 방패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기준으로 연금고갈 시점은 얼마나 늦춰졌는가. 더 손실을 보면 고갈 시점을 앞당길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국민연금이 리밸런싱을 미루는 사이 주가는 하락세로 돌아섰고, 외국인들은 막대한 수익을 챙기고 떠났다. 수익은 누군가의 손실을 뜻하는데 국민연금과 개인투자자들이 떠안은 것이다. 장기투자와 개인투자자 보호라는 명분이 위험관리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국민연금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서 131조971억원의 손실을 봤고, 이는 전체 손실의 71.8%나 된다. 우량 대형주를 일정 규모 이상 보유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투자위험과 원칙을 따지지 않고 과도하게 '쏠림 투자'를 했다는 점이다. 종목과 업종의 쏠림이 심하면 주가가 오를 때 수익이 커지지만, 하락할 때는 그만큼 손실도 커지기 마련이다.
국민연금은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자산배분 원칙과 관리체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먼저 자산배분과 종목·업종별 위험 한도를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어떤 정치적 고려가 운용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의사결정 과정을 공개하고 사후평가도 강화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최우선 역할은 증시의 '불쏘시개'가 아니라 국민의 노후자금을 키워야 하는 '안전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