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주거.일자리 불만이 부른 유럽 시위, 남의 일 아니다
프랑스서 시작된 시위, 유로존 확산
민생 불안이 국가 시스템 흔들 수도
프랑스에서 열악한 교육여건 개선을 요구하며 시작된 시위가 한 달 만에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교사 부족과 낡은 교실 문제를 제기한 고교생에 생활비와 연료비 급등에 반발하는 노동자, 2018년 유류세 인상에 맞서 프랑스 전역을 뒤흔든 '노란 조끼' 운동 지지자들까지 가세하면서 시위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 17일(현지시간) 파리와 마르세유 등 주요 도시에는 정부 추산 55만명이 거리로 나오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폭력사태가 발생해 1200명가량 체포됐다.
시위는 주변국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와 밀라노 등에서는 저임금과 물가 급등, 공공서비스 부실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탈리아 최대 노조는 다음 달 20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벨기에에서는 교육예산 삭감에 반발한 고교생들이 경찰과 충돌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치솟는 월세와 집값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의 배경에는 생활비 부담과 교육·주거·일자리 등 누적된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 중동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에 포퓰리즘적 재정지출과 인플레이션 관리 실패, 주거비 부담까지 겹치면서 청년층의 자산형성과 독립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유로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로,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 압력에 대응한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상은 가계와 기업의 부담을 키웠다.
문제는 각국 정부의 재정 여력마저 줄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지난해 115.6%에서 올해 119.3%로 높아질 전망이며, 재정적자도 4년 연속 GDP의 5%를 웃돌고 있다.
국가재정이 복지나 노년층 지원에 경직되게 쏠리는 사이 공교육 인프라 강화나 청년층을 위한 미래 투자 등 필수 공공서비스 투자가 방치되면서 사회적 분노를 자극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태가 금융시장 불안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10년대 초 유럽 재정위기는 그리스 등 상대적으로 경제 규모가 작은 국가에서 촉발됐지만 이번에는 유로존 2위 경제대국인 프랑스가 진원지다. 프랑스의 재정 문제가 정치·사회적 갈등과 맞물려 심화하면 주변국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유럽의 상황을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다. 청년 취업자는 47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가고, 청년 고용률은 지난달까지 29개월 연속 하락했다. 수도권 집값 불안과 전세사기 후유증은 무주택 청년의 박탈감을 키웠고,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 흔들리면서 사교육시장이 과도하게 커졌다. 고령화로 연금·의료 등 의무지출이 늘고 있지만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현금성 지원 공약을 내놓는다. 단기적인 지원에 재정이 쏠리면 청년 주거·교육·고용에 대한 투자가 밀려날 수 있다.
이번 유럽의 시위는 주거와 교육, 일자리 등 기본적인 민생이 불안해지면 국가 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와 정치권은 유럽의 소요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현금성 지원에 앞서 청년 주거 공급과 교육 등에 충분한 재원을 배분해야 한다. 노동시장과 규제개혁을 통해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늘리는 노력도 서둘러야 한다. 미래 세대에 대한 투자를 미루지 않는 것이 사회 안정을 지키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