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정치

미콜라 쿨레바, 피랍된 우크라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홍채완의 글로벌 이사람]

홍채완 기자
파이낸셜뉴스

사업가에서 아동권리 활동가로
전쟁터 찾아 대피 지원…러시아·점령지 아동 귀환 이끌어

미콜라 쿨레바.사진=미콜라 쿨레바 인스타그램 계정
미콜라 쿨레바.사진=미콜라 쿨레바 인스타그램 계정

[파이낸셜뉴스] 거리의 아이들에게 돌아갈 가정을 찾아주던 사업가는 전쟁으로 흩어진 아이들의 귀환을 돕는 활동가가 됐다.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만나 시작한 활동은 러시아와 러시아 점령지에서 아이들을 데려오는 일로 이어졌다. 구호단체 세이브 우크라이나를 이끄는 미콜라 쿨레바의 이야기다.

쿨레바는 이 공로로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 인물로 주목받았다. 오슬로평화연구소(PRIO) 소장은 지난 9월 발표한 수상 적격 인물·단체 명단에 그를 포함시켰다. 전쟁 속 아동보호를 평화와 안보의 중요한 과제로 조명해야 한다는 취지다. 노벨위원회의 심사와는 별개지만, 아이들의 귀환을 돕는 그의 활동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는 계기가 됐다.

젊은 사업가, 거리의 아이들 앞에서 멈추다
쿨레바의 삶이 방향을 바꾼 것은 1990년대다. 당시 그는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밤늦게 사무실을 나서며 거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자주 마주쳤다. 그는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때로는 먹을 것을 사주며 이들이 처한 사정을 알아갔다.

2023년 우크라이나 방송 '딤'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 왜 아이들이 거리에서 살아야 하는지, 왜 아무도 돌보지 않는지 의문이 쌓였다고 회고했다. 돕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무력감에 울기도 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인권운동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아이들을 돕고, 거리에서 데려와 먹이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다고 했다.

그는 2001년 첫 지원단체를 설립했다. 이후 아이들이 원래 가정으로 돌아가거나 위탁가정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아이를 받아들이는 가족에게도 교육과 지원을 제공했다. 당장의 잠자리와 음식을 마련하는 데서 나아가, 아이가 안정적으로 자랄 환경을 만드는 일로 활동을 넓힌 것이다.

현장의 경험은 공직으로 이어졌다. 2006~2014년 키이우시 아동 담당 부서를 이끌었고, 2014~2021년 대통령 아동권리 담당관을 지냈다. 아동 인신매매 방지와 피해자 지원, 대규모 시설 중심의 아동보호 체계 개편 등에 참여했다.

거리에서 전쟁터로…아이들을 찾아 나선 길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은 그의 활동에도 전환점이 됐다. 쿨레바는 세이브 우크라이나를 설립해 전쟁 피해 아동과 가족의 대피를 도왔다. 친구들과 자동차와 버스를 타고 직접 전투 지역을 찾기도 했다.

그가 기억하는 초기 구호 현장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 동부 데발체베다. 2024년 인터뷰에 따르면, 도시가 점령되기 며칠 전, 쿨레바 일행이 광장에 빵을 실은 차량을 세우자 지하실에 숨어 있던 주민들이 나와 빵을 집어 들고 다시 뛰어 들어갔다고 한다.

당시 그는 지하실로 내려가 어린아이와 함께 있는 가족들에게 대피를 권했다. 그러나 아기를 안은 어머니들조차 대피 도중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떠나기를 주저했다. 아이들을 구하려면 차량을 마련하는 것뿐 아니라 공포에 사로잡힌 가족을 설득하는 일도 필요했던 것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러시아로 이송됐거나 점령지에 있는 아이들의 귀환을 돕는 일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아이들의 소재와 신원을 확인하고, 보호자 서류를 준비해 개별 구출 계획을 세워야 했다. 국경 너머에 있는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여러 나라를 경유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구조는 계속된다
세이브 우크라이나가 공개한 누적 실적에 따르면, 러시아와 점령지에서 구조한 아동은 지난 20일 기준 1843명이다. 귀환 대상에는 가족과 떨어져 러시아로 이송된 아동뿐 아니라 점령지에서 러시아식 사상교육과 군사훈련의 압박을 받던 아이들도 포함됐다.

단체가 공개한 구조 사례에서 16세 일리야는 학교에서 군인들이 무기 조립과 전투용 드론 운용을 가르치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 8세 디나는 러시아식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고아원에 보내겠다는 위협을 받았다. 단체는 이들에게 귀환 후 심리 지원과 서류 관련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전한 곳에 도착했다고 아이들의 상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세이브 우크라이나는 귀환한 아이들과 가족에게 주거와 심리 상담, 의료·법률 서비스, 학습 지원 등을 제공했다. 가족과 다시 만나고 학교에 적응하며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도 구조 활동의 일부로 본 것이다.
거리의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쿨레바가 품었던 질문은 왜 이들에게 돌아갈 집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전쟁은 그 질문을 국경 너머로 넓혔다. 그가 돕는 귀환은 아이가 우크라이나 땅을 밟는 순간을 넘어, 다시 가족의 보살핌 속에서 자랄 수 있는 일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에서 벨라루스를 경유해 우크라이나로 귀국한 우크라이나 아동들.로이터뉴스1
러시아에서 벨라루스를 경유해 우크라이나로 귀국한 우크라이나 아동들.로이터뉴스1

[email protected] 홍채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