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철없는 언행이 부른 병역특례 존폐론
AG 우승 후 "저 군대 안갑니다"
메달 목에 걸고 삐딱한 전역모
병역특례 제도 폐지론 불붙여
극약처방보다 제도 개선 먼저
군필 보람 갖는 풍토 조성 시급
국방 비전과 연계한 대안 절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이 막을 내린 지 보름이 지났다. 그런데도 금메달을 딴 일부 선수들의 부적절한 언행이 부른 병역특례제도 존폐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를 병역특례 대상에서 제외하는 병역법 개정안까지 발의됐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이 이슈가 본격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스포츠는 흔히 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린다. 선수들의 땀과 눈물이 연출하는, 예측불허의 감동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프로들로 채운 야구 대표팀은 전원 아마추어인 일본 사회인팀에 한 차례 패한 후 결승에서 고전 끝에 겨우 이겼다. 그러고도 주장인 노시환이 "어쨌든 금메달 땄지 않나"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지켜본 국민들의 눈에는 감동은 사라지고 일부 선수들의 철없는 태도만 잔상으로 남은 느낌이다.
축구 국가대표팀은 한술 더 떴다. 주장 이기혁은 금메달을 들어 보이며 "군대 안 갑니다"라고 취재진이 묻지도 않은 속내를 드러냈다.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소속 양민혁은 "군 면제, 그거 하나만 보고 경기했다"고 해 가디언 등 외신까지 탔다. 박승수도 전역모를 삐딱하게 쓴 인증샷으로 구설에 올랐다. 나중에 이들은 사과 글을 올렸다. 하지만 메달의 영예보다 군 면제 티켓이 최우선 목표였다는 '불편한 진실'을 노출한 뒤였다.
이로 인해 병력특례제도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고조됐다. 공정의 가치에 민감한 2030세대의 여론은 더 그랬다. 예전엔 예체능 분야에서 국위 선양한 이들에게 병역 혜택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폭넓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출생으로 병역 자원이 넘쳐나던 그때와 다르다. 저성장이 고착된 시대라 20대는 바늘구멍 일자리를 찾는 청년 누구에게나 소중한 시기다. 더욱이 국위 선양 차원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보다 몇 길 위인 방탄소년단(BTS)도 병역의무를 마친 마당임에랴.
그러니 정치권에서 차제에 병역특례제도를 손보려는 움직임에 발동이 걸렸을 법하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주호영·안철수 의원(국민의힘) 등 여야 중진들이 앞장설 정도였다. 지난 12일 병무청 국정감사에서도 여야는 특례 인정 국제대회의 문턱을 높여야 한다는 등 한목소리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이 제도는 1973년에 도입됐다. 그로부터 50여년이 흘러 국민이 공감하는 국위 선양의 '기준선'도 올라간 만큼 정치권이 변화된 여론에 부응하는 건 당연하다. 이번 아시안게임 소동과 별개로.
그럼에도 정치권이 너무 성급하게 대응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참에 병력특례제도를 아예 없애버리자는 식의 감정적 대응은 지양하라는 뜻이다. 대한민국이 스포츠 강국인 현시점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 정도는 성에 차지 않는 성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병역특례가 박찬호, 손흥민 등 세계적 남성 스포츠 스타를 길러낸 산파역을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프로스포츠가 없는 비인기 종목 유망주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 국위 선양의 원동력이 됐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긴 일부 고소득 프로 선수들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후 국가대표 차출에 소극적인 사례도 적잖다. '메뚜기도 한철'이라며 실속을 추구하면서다. 이에 일각에서 입대연령을 늦춰주고 병역특례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제기하는 근거다. 그러나 축구, 야구 등에 국한되는 행태를 빌미로 이를 전 종목에 적용하는 건 불합리한 선택일 것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불태워서는 곤란하다. 일부 선수들의 철없는 언행을 기화로 병력특례제도 완전 폐지라는 극약처방보다는 합리적 개선책을 마련하라는 얘기다. 예컨대 주요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활약한 선수에게만 특례를 주는 '마일리지 제도'(포인트 적립제)도 설득력 있는 대안 중 하나일 듯싶다.
문득 사병 출신 첫 군통수권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초 연설에서 "군대 가서 몇 년씩 썩는다"고 한 발언의 파문이 기억난다. 열악한 환경에서 3년 가까이 의무복무를 했던 시절인지라 솔직하게는 들렸다. 다만 나라를 지키는, 즉 국가공동체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분위기 조성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선 부적절했다.
그렇다면 병역특례제도 개선을 정부의 중장기 국방비전과 연계하는 게 옳다. 현역 복무기간이 18개월로 줄어든 데다 20세 남성 인구는 2035년부터 급감해 2040년에는 14만명 수준으로, 2043년쯤엔 12만명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공정성을 잣대로 병역특례 대상을 축소할 당위성은 있다. 다만 그런다고 입대자가 얼마나 늘겠나. 청년들이 기꺼이 나라를 지키도록 하는 풍토 조성이 급선무다. 병영 환경을 개선하고 군가산점 도입과 제대군인에 대한 예우부터 확대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