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경찰과 검찰, 그리고 중수청
"후진국일수록 경찰의 권력이 막강합니다. 중국의 공안이나 일제강점기 일본 순사가 그렇습니다." 법조를 처음 출입하던 2021년 한 법대 교수가 했던 말이다. '인권의 수호자'로 불리는 검찰 제도의 출발은 막강한 경찰(행정) 권력을 통제하고, 피의자와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도 따랐다.
"아이를 반으로 가르라"는 명령으로 친모를 찾아낸 솔로몬의 판결은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로 보면 매우 위험한 구조다. 현명하지 않은 판사가 판결을 내릴 경우 무고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대혁명 이전의 형사재판은 법관이 직접 범죄를 수사하고, 기소와 판결까지 모두 처리하는 '규문주의' 체제였다. 재판관은 이미 피고인을 유죄로 단정한 채 수사하기 때문에 고문을 통한 자백 강요 등 인권침해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였다. "개작두를 대령하라"고 외치며 악인을 즉결 처단하던 드라마 '판관 포청천' 역시 '악인의 처단'이라는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판관 개인의 명석함과 윤리성에 기대는 위험한 구조다.
우리 검찰 역시 경찰의 과잉수사와 인권침해를 통제하고 피의자·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수집해 억울한 죄인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인권보장기관으로 출범했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쥐며 그 자체로 권력기관이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며 정적을 제거하는 정치수사를 하고, 별건수사와 과잉수사를 남발했다. 더불어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이 내부 비리를 수사하지 않거나 덮어 버려도 이를 바로잡을 수단이 없었다. 검찰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증거조작 문제도 불거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대통령 임기 5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어요"라고 말한 것은 검찰의 집단의식을 반영한 것 아니었을까. 1987년 직선제 이후 퇴임한 대통령 8명 중 절반인 4명이 감옥에 갔다. 단임제 대통령제의 승자독식 구조와 강력한 검찰 권한이 만들어낸 슬픈 자화상인 셈이다.
1948년 출범해 78년간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쥐어 온 검찰청은 지난 2일 폐지됐다. 검찰의 기소 기능은 공소청에 남았고, 직접수사 기능은 중대범죄수사청으로 이관됐다. 중수청이 공소청과 함께 '제2의 검찰청'이 될지, 아니면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출범했으나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제2의 공수처'가 될지는 앞으로의 행보에 달려 있다. '도로 검찰'을 바라는 이도 많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