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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전력망에도 '갓길'을 열때가 됐다

파이낸셜뉴스
장길수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장길수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정부가 '전력망 혁신대책'을 발표했다. 오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 이상을 수용할 수 있도록 전력망 관련 제도를 재설계한다는 구상이다. 망 건설만으로는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정부와 한국전력이 머리를 맞대고 내놓은 해법이다.

전력망은 도로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도로는 차량이 몰리면 정체되지만 전력망의 '정체'는 정전으로 이어져 큰 피해를 초래한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전력망은 보수적으로 운영돼왔다. 하지만 전력망을 제때 건설하기 어려워진 지금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평소 비워 두던 '갓길'을 적극 활용해 통행량을 늘리되, 비상시 차량 진입과 우회를 능동적으로 제어하자는 것이다.

첫 번째 해법은 유연접속이다. 태양광의 연간 평균 이용률은 15% 안팎이다. 그럼에도 정격용량 기준으로 접속 가능 여부를 판정해왔다. 그 결과 태양광 위주의 배전선로는 평소 비어 있음에도 신규 발전설비의 진입이 원천 봉쇄되는 비효율이 발생했다.

이번 대책은 배전선로 1회선의 접속한도를 기존 14㎿에서 16㎿로, 변전소 변압기는 50㎿에서 60㎿로 상향 조정한다. 이렇게 늘어난 용량으로 접속한 설비는 선로가 혼잡해질 때만 일시적으로 출력이 제어된다. 사업자의 발전량 손실은 미미하지만 추가적인 선로 건설 없이 태양광을 즉시 수용할 수 있다. 기존 구축된 차세대 배전망 관리시스템(ADMS)으로 선로를 실시간으로 감시·제어할 수 있게 됐기에 가능한 변화다. 한전이 오랜 기간 축적해온 배전망 운영 역량과 디지털 인프라가 제도 개선의 토대가 된 셈이다.

두 번째 축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활용한 비증설 대안이다. 용량이 포화된 배전선로와 변전소에 ESS를 연계해 낮 동안 생산된 태양광 전력을 충전하고 야간에 방전하면, 선로 증설 없이도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연계할 수 있다. 송전망 분야에서도 '갓길' 개념은 그대로 통용된다. 고장이 발생하는 즉시 인근 ESS의 초고속 충·방전으로 선로의 과부하를 해소해 준다면, 평소 비워 두던 용량까지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른바 가상송전선로(VPL) 개념이다. 송전 용량이 한계에 이른 지역에 송전망 보강용 ESS를 단계적으로 투입할 예정이다.

갓길을 개방한 고속도로일수록 관제와 제어가 필수적이듯, 전력망 역시 실시간 감시·제어 체계와 고장시 즉각 반응하는 유연성 자원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효율적 계통 운영이 가능하게 된다. 대책이 충분한 실증과 시범운영을 거쳐 단계적으로 확대되도록 설계된 점은 적절하며, 유관기관 간의 실시간 협조체계도 빈틈없이 구축돼야 한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증가할수록 계통 관성 저하와 전압 유지라는 새로운 도전 과제가 대두될 것이다. 동기조상기와 계통형성형(GFM) 인버터 등 계통 안정화 자원의 전략적 확충과 함께 계통 운영역량 확보가 병행돼야 한다. 전력망을 '더 짓는 것'과 첨단 기술로 '더 똑똑하게 쓰는 것'은 함께 굴러가야 할 두 바퀴다. 이번 혁신대책은 그동안 더디게 굴러가던 두 번째 바퀴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제도를 설계한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현장의 한전이 긴밀히 협력해 나간다면, 두 바퀴는 더욱 힘 있게 굴러갈 것이다.

장길수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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