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잊혀진 오원철, 존경받는 브루넬
오원철 연탄개발, 경제개발기에
소중한 국산 에너지원으로 활용
중화학공업 정책 입안·추진 주역
英 브루넬, 산업혁명기 토목·조선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엔지니어로
정치인·과학자·문필가보다 존경
오원철 생소한 韓 국가정체성 퇴행
생물은 생존조건을 찾아 이동하거나 주어진 조건에 적응하여 살아남는다. 만약 공간 이동도 어렵고 현지 적응에도 실패하면 소멸이다. 인간의 기본적 생존조건은 식량, 물, 연료의 3가지이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타인과의 거래나 자체적 혁신으로 부족한 자원을 보완하여 생존조건을 확장한다.
생존조건 측면에서 한반도는 양호하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인구가 증가하면서 연료 부족문제에 봉착하였다. 구한말 서양인의 조선 방문기에는 나무가 사라진 민둥산에 대한 묘사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전국적으로 연료 조달을 위한 과도한 산림 벌채가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해방 후 6·25전쟁 기간에 그나마 남아있던 산림마저도 소실되면서 취사와 난방을 위한 기본적 연료마저 부족하게 되었다. 산에 나무는 사라지고 석유·석탄을 수입할 외화도 없는 빈곤국의 에너지 문제는 파국적인 위기상황이었다.
1952년 무렵 이승만 대통령은 유재성 공군 항공창장에게 무연탄을 활용한 에너지원을 만들어 보라고 지시했다. 무연탄은 남한 지역에 매장량이 풍부하지만 탄소함량이 많고 화력이 약하다는 단점으로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만약 무연탄을 가정용 연료로 활용한다면 황폐화된 산도 보호하고 생활용 에너지원도 확보하는 일거양득의 돌파구였다.
유 창장은 경성공전 화공과 출신 오원철 대위에게 임무를 맡겼다. 민간의 무연탄 사용 사례를 조사하던 오 대위는 경남 마산의 중국인 호떡집 주인이 무연탄으로 호떡을 굽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직접 방문하였다. 무연탄 가루를 물로 반죽하여 구멍을 숭숭하게 낸 검은덩어리가 조그만 화덕에서 활활 타고 있었다. 그는 중간의 구멍이 산소와 접촉면을 늘려서 화력을 높이는 비결로 판단하였다. 별도로 수집한 다른 사례까지 참조하면서 연구와 실험을 거쳐 원통형 석탄덩어리에 19개 구멍을 낸 연탄을 개발하였다. 1950년대부터 보급된 연탄은 1980년대까지 국민들의 취사와 난방에 사용되면서 경제개발기 소중한 국산 에너지원으로 활용되었다. 연탄은 전쟁 직후의 빈곤국이 직면한 국가적 에너지 위기를 특출한 엔지니어가 민간의 아이디어를 참고하여 해결한 혁신의 아이콘이다. 이후 오원철 대위는 1960년대 태동기 자동차 산업의 공장장을 거쳐 상공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하여 1970년대 중화학공업 발전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실무책임자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2002년 영국 공영방송 BBC는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0명'의 국민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1위는 나치 독일과의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1874~1965), 2위는 이점바드 브루넬(1806~1859)이었다. 영국사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사자왕 리처드, 만유인력의 뉴턴, 진화론의 다윈, 증기기관의 와트, 대문호 셰익스피어 등 쟁쟁한 인물들에 앞선 브루넬은 19세기 산업혁명기에 토목과 조선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엔지니어였다. 그는 영국이 근대산업 최강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의 중요인물로서 터널, 교량, 철도 분야의 대규모 토목공사와 대형 증기선 건조를 주도하였다. 세계 최초의 현수교를 브리스틀 에이번 협곡에 설계(1831년)한 이후 100여개의 교량 공사에 참여하였다. 런던∼브리스틀에 당시 최장 거리인 200㎞를 최고 시속으로 1시간에 주파하는 철도 건설(1833년)을 주관하였다. 조선분야에서는 세계 최초로 대서양 횡단 증기선(1837년), 철제 증기선(1843년), 런던∼호주 직항 증기여객선(1859년)을 건조하여 근대 조선·해운산업을 개막하였다. 21세기의 평범한 영국인들이 엔지니어 브루넬을 저명한 정치인, 과학자, 문필가들보다 더욱 존경하는 이유는 현재 그들이 생활하는 근대적 공간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오원철은 연탄을 개발하여 에너지 위기를 극복한 단발적 혁신의 차원을 넘어서 빈곤한 국가를 부강한 미래로 견인한 중화학공업 정책을 입안·추진한 실무 주역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자동차, 전자, 기계, 조선, 금속, 화학, 방산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게 한 일등공신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오원철에 생소하고, 영국인은 브루넬을 기억하고 존경한다.
공동체는 다양한 기억을 공유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며 역사적 인물은 그 핵심이다. 우리나라 각지의 기념물을 비롯하여 심지어 아동용 위인전에도 지난날의 정치인, 군인, 학자, 문예인은 즐비하지만 오늘날의 경제산업을 개척한 엔지니어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원철과 브루넬의 대비는 전근대적 명분론에 침잠된 현재 대한민국 정체성의 퇴행적 현주소를 나타낸다.
김경준 전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