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조용', 김여정은 '맹공'…최고지도자 '여지' 남기는 北 외교
(서울=뉴스1) 김예슬 윤주현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김여정 당 총무부장이 최근 외교 분야에서 '역할 분담'을 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김 총비서는 민생과 정치적 결속을 챙기는 데 집중하고, 대외 사안에 대한 메시지는 김 부장이 사실상 전담하면서다. 이는 북한이 향후 국면 전환이 필요할 때 전격적인 '최고지도자의 결정'을 활용하기 위한 여지를 남겨두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22일 나온다.
김 총비서는 지난 9월 4일 제15차 전국교원대회 참석을 시작으로 이달 19일 경공업부문 피복 및 신발 전시회 참관까지 11건의 공개활동에 나섰다.
이 가운데 군사 관련 행보는 9월 6일 5000톤급 구축함 '강건'호 취역식, 9월 중순 군수공업공장 방문, 10월 3일 중거리 전략미사일 발사훈련 참관, 10월 11일 국방혁명박물관 개관식 등 4건이었다.
나머지 활동은 9월 9일 정권 수립 기념행사와 선전부문 일꾼 강습회,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80주년 기념연설, 10월 10일 당 창건 81주년 기념일 기념공연 등 주로 내부 결속이나 민생·경제 관련 일정에 집중됐다.
특히 북한이 9월 이후 여러 종류의 탄도미사일과 방사포 발사 등 무력 도발을 이어왔음에도 김 총비서가 직접 참관한 사례는 이달 3일 중거리 전략미사일 발사훈련 때 한 번에 그쳤다. 군사 분야 공개활동을 완전히 중단한 것은 아니지만, 이 과정에서 대남·대미 현안에 대해 공세적인 메시지를 발신하는 모습은 거의 두드러지지 않은 것이다.
선명해진 역할 분담…'대외총괄' 김여정 입지 '최절정'
반면 김 부장은 국제사회의 비핵화 압박부터 한미일 연합훈련,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 사고와 군사분계선(MDL)에서의 '국경선 요새화' 관련 갈등 사안, 정부의 대북 의료장비 지원 거부까지 주요 대외 현안마다 잇따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외교 관련 북한의 모든 공식 입장이 김 부장을 통해 나오는 것으로, '대외총괄'로서의 입지가 최절정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부장은 지난 9월 17일과 19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에서 제기된 북한에 대한 비핵화 요구를 반박·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18일에는 한미일 연합훈련인 '퍼시픽 뱅가드 2026'을 문제 삼으며 한미일 군사협력을 자신들에 대한 위협이라고 비난했다.
같은 달 30일과 이달 2일에는 DMZ 지뢰 폭발 사고와 관련한 북한의 책임을 부인하는 담화를 연이어 발표했다. 또 이달 3일에는 북한의 중거리 전략미사일 발사훈련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의 미사일 추적 능력을 조롱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 발사훈련은 김 총비서도 참관했지만, 정작 '메시지'는 김 부장이 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어 8일과 9일에는 정부가 향후 남북 관계 개선을 대비해 준비한 대북 의료장비 지원 계획을 비난했으며, 19일에는 군사분계선(MDL)을 무단 월선한 북한군에 대한 우리 군의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을 문제 삼으며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전날인 21일에도 그는 이달 중으로 대남 확성기를 '가동 상태'로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대남 공세를 강화했다.
김 부장은 지난 2018년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외 사안에 대한 북한 당국의 중요한 입장을 발표하는 역할을 맡으며 '대외총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 총비서의 친동생이라는 백두혈통의 권위까지 더해지면서, 그가 내놓는 메시지는 다른 당국자 및 기관 명의의 입장과는 '차원이 다르게' 해석됐다. 최근 연이은 '담화 공세'도 그의 권한과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원래 군사활동과 관련한 메시지는 국방성이나 총참모부 차원에서 나왔지만, 최근엔 그렇지 않다"라며 "무게감 있는 정책적 메시지를 내는 역할은 김여정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뜻이며 군 조직은 '명령을 집행하는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기능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2018년 '평창 올림픽 참가 선언'으로 국면 전환…또 '결정적 순간' 대비?
김 부장의 입지는 그가 지난 21일 MDL 인근을 찾아 '국경선 요새화' 작업 현장을 시찰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통상 북한군의 주요 활동을 챙기는 것은 '최고사령관'인 김 총비서의 몫이었는데, 김 부장이 이제 북한군의 주요 사업까지 직접 챙기는 이례적 행보를 보였다는 점에서다.
특히 김 부장은 현장에서 김 총비서의 직접적인 명령을 거론하며 자신의 권위를 스스로 과시하기도 했다. 김 부장은 "국가수반(김정은)은 영토주권을 행사하는 데서 단 한 치의 양보도 없어야 하며 적대국가와의 국경선을 가장 영구적인 선으로 만들 데 대해 명령했다"라며 "우리 군대는 이 역사적인 사명을 집행할 데 대한 국가수반의 명령을 철저히 관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부장이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를 시사하며 MDL 시찰을 준비하던 19일, 김 총비서는 지방공장에서 만든 옷과 신발 전시회를 시찰하고 있었다.
이 같은 두 인물의 역할 분담은 '절대적'인 최고지도자의 권위 문제가 고려된 북한 특유의 방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북한은 현재 중국·러시아와 밀착하면서도 언제가 있을 미국과의 외교를 대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고지도자가 필요 이상으로 단정적인 대외 강경 지침을 자주 발신할 경우, 향후 '국면 전환'이 필요한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전환의 논리를 구성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부조직이나 주민들의 입장에선 최고지도자가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대미 외교와 관련해 김 총비서는 지난해 9월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북한의 핵보유)하며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고 발언했는데, 이 같은 '조건부 대미 대화 가능성'을 북한에서 언급한 이는 김 총비서가 유일하다. 이는 메시지의 권위나 중요도를 높이는 장치로 볼 수 있다.
임을출 교수는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 시시콜콜한 막말을 하진 않는다는 것"이라며 "김여정이 김정은을 대신하면서도 그의 권위를 보호하기 위해 전면에 나서 대남·대미 메시지를 발신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김 총비서가 지난 2018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선언하며 미국과 핵 능력을 두고 극단적 언사를 주고받던 긴장된 정세를 한 번에 바꾼 전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북한이 향후 다른 방식의 외교 전략이 필요할 때 '가장 권위적 결정과 메시지'를 활용하기 위해 현재 김 총비서의 행보를 조절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