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더 이상 '삼바의 나라'는 없다
블루 타이드가 이끄는 시대 변화
남미 넘어 글로벌 지각변동 예고
낙천적 공동체 무너지는 과정
국가운영의 타산지석 삼아야
정치 분열로 인한 공동체 위기
연대와 신뢰, 희망 회복이 열쇠
브라질까지 보수·우파 세력들의 잇단 집권 현상인 '블루 타이드(Blue Tide)'가 밀어닥칠까. 브라질 대선 결과는 남미의 변화를 가리키고, 국제 관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전과 다른 무게를 갖는다.
우파 보수주의의 거센 도전에 집권 여당은 결선 투표일 25일(현지시간)을 며칠 앞두고,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며 막판 추격전을 벌였다. 1.87%p, 222만표 차. 지난 4일 1차 투표에서 '예상 밖 패배'를 당한 80세 현직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노동당(PT) 후보 측은 막판 뒤집기 총력전을 펼쳤다. 지난 15일 '주 5일제' 법안 통과를 비롯해 유류세 인하, 소상공인 부채 탕감 등의 민생 지원책 속에 지지율 격차가 19일 여론조사에서는 0.6%p까지 줄었다.
1차 투표 전까지 우세로 여겨졌던 '남미 좌파 아이콘' 룰라의 고전에는 브라질 사회의 커다란 변화와 시대 변천이란 급류가 흐른다. 룰라 측이 '독재 회귀 막는 민주 수호'를 아무리 외쳐도, 강력범죄 척결과 민생경제 회복을 들고 나온 45세 자유당(PL) 후보 플라비우 보우소나루의 호소가 더 먹혀든다. 남미와 브라질은 대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나.
브라이언 윈터 '아메리카스쿼터리' 편집장은 최근 "브라질은 이제 중도 우파 국가"라며 "룰라 시대 브라질은 거의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그 자리에 "대형 교회, 쇼핑몰, 카우보이 모자가 등장했다"며 "미국과 공통점이 많은 나라가 됐다"고 평가했다.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춤과 음악으로 삶을 즐기는 낙천주의, 다양한 인종·문화가 어우러지는 사회적 포용과 공존의 공동체, 풍부한 자원과 거대한 영토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더 나아질 것이란 미래 기대와 희망…. 어려워도 함께 춤추며 공동체를 유지하던 그런 과거 삼바의 나라는 더 이상 없다.
그 대신 치솟는 경제불안과 사회갈등, 확산되는 조직범죄 등은 공동체 공간을 위축시키면서 일상까지 옥죄고 힘겹게 했다. 종교적 정체성 대립과 진영 논리, 이해관계 충돌도 갈수록 불거지면서 공동체를 갈라 놓았다.
2025년 입소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9%는 브라질 사회가 나빠지고 있고, 76%는 공정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답했다. 2024년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는 국민 80%가 다른 정치세력 지지자들 사이에 격렬한 갈등이 존재한다고 답했고, 사회적 신뢰 붕괴를 호소했다. 집권 좌파에 대한 피로감 속에 거센 보수·우경화 물결, 기독교 복음주의의 폭발적 성장 등도 보수 우파 약진에 추동력이 됐다.
보우소나루가 이기면 남미에서 블루 타이드, 우파 집권 물결이 완성된다. 경제력·인구·면적에서 남미 12개국의 절반인 브라질은 압도적인 영향력과 의미를 갖는다. 아르헨티나, 칠레 등 10여개국에 이어 브라질의 블루 타이드 합류는 지역 및 국제 정세에도 지각변동을 예고한다.
당장 대중 관계는 시험대다. 대두 등 농산물과 원자재를 수입해 연간 250억~300억달러의 흑자를 안겨주고, 유럽연합(EU)·미국과의 교역 규모를 합친 브라질 무역의 27%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 우파 정부라도 당장은 교역 관계를 흔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브라질을 중남미 거점으로 삼고 전략적 협력을 심화해 나가려는 중국의 전략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5G·6G 통신, 인공지능(AI), 국방, 방산기술, 철도·항만 등 핵심 인프라 건설과 안보 전략 분야를 미국 중심의 친서방 기조로 전환하면서 중국 진출을 제한할 가능성이 크다. 보우소나루는 외교·경제 정책의 무게중심을 중국에서 미국으로 옮기겠다고 밝혀왔다. 그에게 룰라 정부의 등거리 외교는 더 이상 없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앞마당에서 중국 영향력이 더 커지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이를 2025년 말 '국가안보전략(NSS)'과 2026년 초 국무부 5개년 외교전략문서를 통해 구체화했다.
남미의 지각변동은 우리에게도 엄중하게 다가왔다. 미중 전략 경쟁 가속화와 새 정권 출범이란 변화 속에서 현지 생산기반 확대와 공급망 다변화, 남미에서 중견국 외교를 어떻게 펼쳐나갈지 더 정교한 전략과 실천이란 도전을 던지고 있다. 정치가 미래와 희망을 보여주지 못할 때, 국가가 기본적인 치안과 법 집행 공정성을 유지하지 못할 때, 종교가 사회 연대보다 정치적 이해관계 강화 수단이 될 때 국가가 어떻게 흔들리는지는 '달라진 브라질'이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 손상받아온 우리 신뢰 자본과 공동체를 어떻게 치유해 나갈까 경각심 속에 절치부심할 때다.
[email protected] 이석우 국제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