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 세수만 믿고 재정 늘리지 말라는 한은 총재의 경고
[파이낸셜뉴스] 한국은행 신현송 총재가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에 "한번 늘린 지출은 되돌리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일시적인 반도체 세수에 기대어 지출을 늘리면 재정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한은 총재가 재정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이처럼 강조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신 총재는 현재 정부 예산을 심의 중인 국회에 엄격한 심사도 주문했다.
신 총재는 지난 22일 기준금리를 연 3.00%로 동결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재정은 지속 가능성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일시적 재원으로 지속적인 지출 증가가 생긴다면 나중에 되돌리기 상당히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재정당국도 잘 살피고 있을 것"이라면서도 "궁극적으로 국회에서 엄격히 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유 최고가격제에 대해서도 "일시적 물가 억제 효과는 있지만 오래 지속되면 가격 구조의 왜곡이 생기고 재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언급하며 장기화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신 총재의 이번 발언이 주목되는 것은 그동안 재정정책에 관해 해온 원론적 설명보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한층 강하게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는 통화 긴축과 정부의 확장 재정이 상충한다는 지적에 "재정 확대가 잠재성장률을 높이면 반드시 엇박자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한은이 물가와 금융 안정을 위해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정부는 내년 총지출을 820조원 이상으로 늘린 '슈퍼 예산'을 편성했다. 확장 재정이 총수요를 자극해 통화 긴축의 물가 안정 효과를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올해 63조2000억원의 초과세수를 예상한 데 이어 내년에도 반도체 호황 등에 따른 세수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도 조성할 계획이다. 그러나 경기와 산업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세수 전망에 기대어 지출을 늘리는 것은 위험하다. 한은 분석에서 거론된 재정승수 0.2 수준의 현금성 이전지출은 투입한 재정에 비해 경기 부양 효과가 작을 수 있다. 이런 사업이 상시 지출로 굳어지면 경기 하강기에 지출을 줄이기 어려워 재정 부담이 커지고 미래 세대의 조세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한은 총재가 정부의 재정정책을 직접 거론한 것은 그만큼 우려가 크다는 뜻으로 읽힌다. 정부와 국회는 이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국회는 예산 심사 과정에서 일회성 세수에 기대는 현금성 이전지출과 선심성 사업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 일시적으로 늘어난 세수는 상시 지출을 확대하는 데 쓰기보다 국채 상환과 재정건전성 회복에 우선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석유 최고가격제 등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는 정책을 단계적으로 정비하고, 국가채무비율 상한 등을 법제화한 재정준칙을 마련해야 한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재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세워야 한다. 프랑스 등 유럽의 대규모 시위의 근원이 재정 정책의 실패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