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잔 든 최태원, 식판 든 이재용…총수들의 '한 끼 리더십'
[파이낸셜뉴스] 지난 2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을지로 회식 장면이 포착된 영상 등이 화제가 됐다. 최 회장이 서울 을지로 노포 야외 테이블에서 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가감 없이 담긴 영상들이 SNS에서 확산했다.
같은 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사막의 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직원들과 구내식당 점심을 함께했다. 장소도 메뉴도 달랐지만 메시지는 닮았다. 사무실을 벗어나 같은 테이블에서 함께 식사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신뢰를 쌓겠다는 뜻이다.
최 회장이 21일 저녁 찾은 곳은 을지로의 바비큐 식당 '달맞이광장'이다. 밤이면 골목에 테이블을 내놓는 을지로의 '야장 명소'로 MZ 세대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카키색 셔츠에 검은 패딩조끼 차림으로 참석한 최 회장은 임직원들 사이에 앉아 식사를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날 회식은 근처 제주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2차까지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 발표가 아니라 시민들이 SNS에 올린 목격담과 영상으로 알려졌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영상 속 최 회장은 손짓을 크게 하며 직원들과 웃고 있었고, 관련 영상 조회수는 100만 회를 넘겼다.
최 회장의 이런 행보는 처음이 아니다. 2019년에는 식당에서 직원들과 예고 없는 '번개 행복토크'를 열었다. 2020년에는 서린빌딩 인근 식당과 호프 7곳을 약 5시간에 걸쳐 돌며 직원들의 회식 자리에 차례로 합석하기도 했다. 대표이사가 아니라 '옆자리 선배'로 다가가는 방식이다.
21일(현지시간) 이 회장은 아부다비 알 다프라 지역의 가스화력발전소 건설 현장을 찾았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현지 기업 트로잠 제너럴 컨트랙팅과 짓고 있는 설비용량 1000MW, 총사업비 13억5000만달러(약 1조 8700억원) 규모의 발전소다.
이 회장은 현장 직원들과 주요 설비를 둘러보며 공정과 안전 관리 상황을 점검했다. 점검을 마친 뒤에는 직원들이 평소 쓰는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식사 자리에서는 현지 생활과 근무 여건을 물었고, 무더위와 해외 근무의 어려움, 건의사항을 직접 들었다. 이어 삼성물산·삼성E&A 경영진 및 직원들과 간담회를 열고 중동 시장 변화와 향후 사업 방향, 해외 현장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이 회장은 닷새 앞선 16일에도 사우디아라비아·UAE·이란 등 불안이 이어지는 중동 9개국에 파견된 임직원 730명과 가족에게 격려 선물과 편지를 보냈다. 현지 직원에게는 300만~500만원 상당 상품권, 국내 가족에게는 200만~300만원 상당 온누리상품권이 전달됐다.
이 회장이 보낸 편지에는 "각자 자리에서 보여주시는 책임감과 노력에 깊이 감사한다", "회사는 언제나 여러분의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3월에도 UAE·카타르·사우디 주재 임직원과 가족 500여 명에게 같은 선물과 편지를 보냈다.
두 총수들이 임직원과 소통을 위해 식사 자리를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 시카고대 연구진이 지난 2017년 '저널 오브 컨슈머 사이콜로지'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같은 음식'을 함께 먹는 행위는 사람들 간의 신뢰를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에 따르면 임금 협상 역할극에서 같은 간식을 먹은 양측은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고 더 빨리 합의에 이르렀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같은 것을 먹는다'는 사실 자체가 신뢰의 신호가 된다는 것이다. 두 총수가 별도 자리 대신 직원과 같은 야장 바비큐, 같은 구내식당 식판을 택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다만 두 총수의 한 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최 회장의 을지로 회식은 위계를 낮추는 '수평적 소통'에 가깝다. 격식 없는 노포와 야외 테이블이라는 무대 자체가 '회장도 우리와 같은 자리에 앉는다'는 메시지가 된다. 반면 이 회장의 UAE 구내식당 식사는 '현장형 케어'에 가깝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총수들이 임직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배경으로는 조직 내 결속력을 높이고 현장 중심의 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행보로 보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경영에 반영하는 것이 향후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email protected] 김희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