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나를 돕지 않아"…'흉기난동' 최충락, 망상 속 범행 결심(종합)
(인천=뉴스1) 박소영 기자 = 인천의 한 대형 상업시설에서 시민 10명에게 흉기를 휘두른 최충락(59)이 병원과 경찰 등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진 상태에서 범행을 결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충락은 구체적인 범행 장소나 대상을 정하지 않은 채 흉기를 들고 집을 나섰다가 경찰이 자신을 붙잡으러 온다는 생각에 갑자기 뛰기 시작했고, 눈앞에 나타난 대형 상업시설을 범행 장소로 삼은 것으로 파악됐다.
23일 오전 인천 남동경찰서에서 열린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경찰은 이 같은 내용의 최충락 범행 동기와 범행 전후 행적 등을 발표했다.
"경찰이 나를 원격조종"…망상 속 범행 결심
경찰에 따르면 최충락은 약 30년 전부터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아왔으며 지난 8월쯤부터 병원과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9~10월 의무기록에는 우울증과 사회적 불안감, 공포감, 공황장애 등의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최충락은 경찰 조사에서 누군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고 경찰이 자신을 원격 조종하며 병원 측이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병원과 경찰, 구청 등 어느 곳에서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피해를 세상에 알리고 도움을 받기 위해 범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했다.
경찰은 이러한 진술과 수사 내용을 토대로 최충락이 범행 당시 깊은 망상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최충락은 범행 2~3일 전부터 범행을 고민했지만 구체적인 시기와 장소, 공격 대상이나 방법까지 미리 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최충락은 병원과 경찰, 구청 등 세상이 자신을 돕지 않고 수렁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며 "여러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특정 사건 하나를 직접적인 범행 계기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최충락은 범행 당일인 지난 13일 흉기와 망치 등을 배낭에 넣고 집을 나섰다. 이후 계양구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와 보호관찰소, 방송통신대학교 등을 차례로 방문했다.
방송통신대에서는 휴학계를 제출했다. 최충락은 사회복지사로 일할 생각으로 2024년 입학해 3학년에 재학 중이었으며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아직 취득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최충락은 대학을 나서던 중 배낭 밖으로 칼날이 약 5~6㎝ 튀어나온 것을 발견했다. 이후 누군가 자신을 112에 신고했고 경찰이 출동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졌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는 범행하기 전에 붙잡히면 자신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릴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해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고 했다. 경찰이 확보한 CCTV에도 별다른 외부 자극 없이 최충락이 갑자기 뛰기 시작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후 눈앞에 보인 구월동의 한 대형 상업시설에 사람이 많이 모여 있을 것으로 생각해 해당 건물을 범행 장소로 선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어린이집을 범행 대상으로 고려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는 사전 답사나 범행 준비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이 최충락의 범행 전 동선을 역추적한 결과 어린이집 2곳 앞을 지나간 사실은 확인됐다. 하지만 어린이집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주변을 주시하고 배회하는 등의 특이 행동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어린이집은 피의자가 망상에 빠져 여러 방법을 생각하던 중 스쳐 지나간 생각이었다"며 "피의자도 곧 마음을 접었다고 진술했고 실제 범행 대상으로 삼으려 한 객관적인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흉기 든 채 보호관찰소 출입…금속탐지기는 '전원 OFF'
수사 과정에서는 보호관찰소의 출입 관리 문제도 드러났다. 최충락은 범행 당일 흉기와 망치 등 금속성 물건이 든 배낭을 멘 채 보호관찰소를 방문했다. 출입구에 설치된 문형 금속탐지기를 통과했지만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다.
경찰이 보호관찰관 2명을 참고인으로 조사하고 CCTV를 분석한 결과 당시 금속탐지기의 전원이 꺼져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보호관찰관들은 직원과 민원인이 출입할 때 탐지기가 민감하게 반응해 경보음이 자주 울리는 등 번거롭다는 이유로 편의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찰은 보호관찰관들의 진술을 토대로 적어도 올해 1월부터 금속탐지기를 작동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정확히 누가 언제 전원을 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보호관찰소 출입문도 외부 방문자의 신원을 확인한 뒤 열어주는 방식으로 운영돼야 하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통제 없이 개방돼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최충락 역시 별도의 출입 통제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최충락은 과거 보호관찰소를 방문했을 때 여러 차례 소지품 검사와 신체 수색을 받은 경험이 있지만 최근에는 검사가 뜸해졌다고 진술했다.
범행 당일에도 흉기가 발각될까 봐 겁이 나고 떨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금속탐지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최충락의 흉기 소지를 발견해 필요한 조치를 할 기회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보호관찰관들을 직무유기 혐의로 별도 입건하지는 않았다. 금속탐지기를 작동하지 않은 사실만으로 직무유기가 성립한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내부 운영 규정과 관리 책임, 작동 중단 경위 등에 대한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경찰은 관련 내용을 법무부에 통보해 진상조사를 요청하고 문제가 확인될 경우 상응하는 조치를 하도록 요청할 예정이다.
경찰 "살인의 미필적 고의"…9월 흉기 소지도 법률 검토
경찰은 최충락에게 적어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최충락은 조사에서 칼에 힘을 조절해 치명상을 입히거나 피해자들을 숨지게 할 의도는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깊게 찌르려고 했다거나 치명상을 입히려 했다고 진술하는 등 진술이 일관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피해자들의 상처 깊이와 장기 손상 부위, 범행에 사용한 흉기와 손 보호장구 등을 종합해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봤다.
최충락은 손에 흉기를 고정하고 더 깊게 찌르기 위해 테이프로 만든 손 보호장구를 사용했다는 취지로도 진술했다.
최충락이 범행 당시 현금 680만 원을 소지했던 경위도 조사됐다. 최충락은 지난 7일 서울 종로의 한 금은방에서 가지고 있던 귀금속을 약 300만 원에 판매해 현금으로 받았다.
병원 측이 민사소송을 제기할 경우 자신의 계좌에 있는 돈을 빼앗길 수 있다는 생각에 현금을 보관했다는 게 최충락의 진술이다. 경찰은 도주자금으로 마련한 돈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최충락은 병원으로부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고도 주장했으나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 해당 문자를 받은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최충락이 지난 9월 9일 병원 앞에서 흉기를 소지한 채 1인 시위를 벌였던 사건에 대해서는 추가 법률 검토가 진행 중이다.
당시 최충락은 현수막에 구멍을 뚫어 줄을 연결하려고 흉기를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CCTV에서도 현수막에 구멍을 뚫는 모습 외에 흉기를 들고 배회하거나 다른 사람을 위협하는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당시 상황만으로 공공장소 흉기소지죄 혐의가 명확하다고 보기 어려워 현장에서 흉기를 강제로 압수하거나 최충락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지난 6일 최충락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해당 흉기를 임의제출받아 압수했다. 이 흉기는 이번 구월동 범행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경찰은 9월 9일 행위에 공공장소 흉기소지죄가 성립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인천경찰청 수사심의 부서에 법률 검토를 의뢰한 상태다.
경찰은 이날 최충락을 살인미수와 공공장소 흉기소지 혐의로 인천지방공소청에 구속 송치했다.
한편 최충락은 지난 13일 오후 1시 48분쯤 인천 남동구 구월동의 한 대형 상업시설 2~3층에서 시민 10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 가운데 19세 여성은 현재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