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물러나도…이스라엘 중동정책에 근본적 변화 어려워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이스라엘이 오는 27일 총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루더라도 중동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강성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물러나면 극우 세력 영향력이 줄고 외교적 유연성이 다소 커질 수 있지만, 이란을 핵심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고 군사력을 우선시하는 안보 전략과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반대하는 기조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로이터통신은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과 이후 가자지구·레바논·이란에서 이어진 전쟁을 거치며 이스라엘의 안보 전략이 한층 강경해졌다고 진단했다. 정당의 성향과는 별개로 △이란의 영향력 억제 △국경 밖 완충지대 유지 △군사력을 통한 적대 세력 억지라는 세 가지 축이 이스라엘 안보 전략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네타냐후 재집권 땐 강경 노선 강화 가능성
이번 총선은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우파 리쿠드당과 극우 동맹 세력에 맞서 전직 군 참모총장 가디 아이젠코트 등이 이끄는 야권이 도전하는 구도다. 네타냐후 총리가 승리하면 극우 세력의 영향력이 더욱 커져 이란과의 대립이 격화하고,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정착촌 확대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 정책도 강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네타냐후 총리의 전 보좌관 아비브 부신스키는 로이터통신에 네타냐후가 재집권하면 정착촌 확대와 이란·하마스·헤즈볼라를 상대로 한 군사작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이후에도 현재의 강경 기조가 유지되고,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이스라엘이 위협을 억제하고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제 대응과 공세를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잠재적 위협을 사전에 제거하고 이스라엘을 역내 강국으로 만들며 무기 조달의 자립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이란의 위협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려면 이란의 성직자 통치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내놨다.
야권의 아이젠코트 역시 이란의 핵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 9월 신당 창당식에서 "결국 이 사태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파괴하거나 해체하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 이미 440㎏의 고농축 우라늄이 축적돼 수개의 핵무기로 신속히 전환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이 목표는 아직 달성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예루살렘포스트에 따르면 아이젠코트는 이란의 핵 위협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미국이 60% 농축 우라늄이 남아 있는 핵심 시설 주변에 이른바 '타격 구역'을 설정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핵물질 이동 등 의심스러운 움직임이 포착되면 공습할 수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1990년대 이라크에서처럼 장기간 항공 전력을 배치해 핵 활동을 감시하자는 것이다. 핵 위협을 일시적으로 지연하는 합의에 그치지 않고 장기간의 사찰을 통해 핵 프로그램의 재건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카네기 중동센터의 마이클 영은 이스라엘의 안보 기득권층과 정치권 상당수가 이란에 맞서고 국경 밖에서 위협을 차단하며 군사적 억제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인식이 정권 교체 이후에도 안보 정책의 큰 변화를 추진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정권 교체해도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은 요원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도 근본적인 정책 전환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이란 정책의 연속성이 안보 기득권층의 전략적 판단에 기반한다면,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는 정치권의 우경화와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대한 반대 기류가 주요 제약 요인으로 꼽힌다.
팔레스타인 정치 분석가 가산 알카티브는 로이터통신에 이스라엘 정치권이 여론의 우경화 속에서 강경한 입장을 경쟁적으로 내세우고 있다며, 주요 정당 간에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반대와 정착촌 확대 지지라는 공통점이 크다고 진단했다.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는 정당은 소수인 아랍계 정당들뿐이다.
반(反) 네타냐후 진영이 집권하면 정착민 폭력을 억제하고 정착촌 정책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반발을 줄이려 할 수 있다. 미국의 압박에도 현 정부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는 정책 목표 자체를 바꾸기보다는 추진 방식과 속도를 조정하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런던에 본부를 둔 중동 매체 '더 뉴 아랍'은 네타냐후 총리가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과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 등 극우 인사들에게 점점 더 의존해 왔다고 짚었다. 이들의 영향력은 정착촌 확대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약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대한 강경 정책으로 이어졌다. 정권 교체로 극우 세력의 입지가 좁아지면 일부 정책을 조정할 수 있지만,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추진할 정치적 동력까지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가자지구는 변화 여지…서안지구·주변국 불안은 지속
정권 교체에 따른 변화가 상대적으로 기대되는 분야는 가자지구의 전후 재건과 통치 문제다. 극우 세력의 영향력이 줄어들면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의 재건 노력에 더 협조하고, 팔레스타인 측이 참여하는 전후 통치 체계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미국과 이집트 등 가자지구의 안정을 추진하는 국가들의 요구에도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마스의 무장 해제와 이스라엘의 안보 요구, 전후 가자지구의 통치 주체를 둘러싼 이견은 여전히 크다. 이스라엘 정치권 주류가 2023년 10월 7일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데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한계다. 새 정부가 대립적인 접근을 완화하더라도 이스라엘의 군사적 통제를 끝내거나 전후 통치 체계를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안지구에서는 정착촌 확대와 정착민 폭력, 이스라엘의 통제 강화가 주요 쟁점으로 남아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경제적·정치적으로 약화한 가운데 정착민 폭력과 주민들의 불만이 쌓이면 작은 사건도 대규모 봉기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가자지구에서 전후 통치와 재건을 둘러싼 협상의 여지가 있더라도 서안지구의 영토·정착촌 문제는 정치적 합의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주변 아랍 국가에도 부담이다. 요르단은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대규모로 강제 이주할 경우 난민 유입으로 정치·사회적 안정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집트 역시 가자지구 주민들이 라파 국경을 넘어 시나이반도로 대거 이동하는 상황을 안보상의 레드라인으로 간주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