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포럼

[포럼] 말이 우리를 가둔다

파이낸셜뉴스
홍대순 광운대 경영대학원 교수
홍대순 광운대 경영대학원 교수

우리는 말을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면 말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력단절여성', 흔히 줄여서 '경단녀'라는 말이 있다. 더구나 '경단녀'라는 세 글자로 줄이는 순간 한 사람의 오랜 경험과 능력이 '단절된 여성'이라는 하나의 꼬리표로 압축된다. 출산과 육아 등으로 직장을 떠났다고 그 사람의 경력까지 '단절'된 것일까. 반면 '경력보유여성'이라는 표현은 어떤가. 단어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시선이 달라진다. '단절'은 결핍이 부각되지만 '보유'는 가능성을 드러나게 해준다. 바로 긍정언어의 힘이다.

'반팔'이라는 말도 한번 뒤집어 보자. 짧은 소매를 뜻하는 익숙한 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팔'이라는 신체 자체가 절반인 것처럼 들릴 수도 있고, 자칫 누군가에게 커다란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더구나 같은 논리라면 짧은 바지는 '반다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반다리'가 아니라 '반바지'라고 한다. 그렇다면 '반팔' 대신 '반소매'라고 부르면 어떨까. 너무 익숙해서 의심하지 않았던, 무심코 사용해오던 언어를 타인의 자리에서 다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골린이' '주린이' '요린이'라는 말도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왔다.

한편으로는 초보자를 친근하게 표현한 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는 '어린이=미숙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무의식적으로 숨어 있지 않은가. 어른의 미숙함을 표현하기 위해 '어린이'를 빌려 쓰는 우리의 언어에 대해서, '색동회'를 설립하고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떻게 바라볼까. 어린이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한 국가의 품격과 직결되는데도 말이다. '계약직'을 '비정규직'이라고 부르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비(非)'는 '아니다'라는 뜻이다. 정규직을 기준으로 세우는 순간 다른 노동 형태는 언어 속에서 이미 주변부가 된다. 고용 형태를 설명하는 말이 어느새 사람의 사회적 위치까지 규정할 수 있다.

기업의 언어도 예외가 아니다. 기업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람을 '인적자원(Human Resources)'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익숙한 말을 잠시 낯설게 바라보자. 사람이 정말 '자원'인가. 토지와 자본, 기계처럼 확보하고 배치하고 활용하는 대상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적자원'이라는 익숙한 네 글자가 섬뜩하게 다가온다. 사람을 '자원'이라 부르는 순간 인간은 존엄의 주체에서 관리와 활용의 대상으로 내려앉는다. 말 하나의 차이다. 그러나 그 한마디 속에 사람을 바라보는 철학이 숨어 있다. 언어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사람을 어떤 단어로 부르는가는 결국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준다. 더 무서운 것은 같은 언어를 반복하다 보면 그 언어가 만들어 놓은 세계를 현실 그 자체라고 믿게 된다는 점이다. 이제 내가 사용하는 말 속에 어떤 전제와 편견이 숨어 있는지를 질문하며 되새겨 보자. 당신이 오늘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 그 한마디는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는가.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작게 만들고 있는가.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단어 몇 개가 아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언어다.

홍대순 광운대 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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