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해산물 맛보러 갔다가 가을 숲길에 반하다…울진의 재발견
【울진(경북)=정순민 기자】 경북 울진은 붉은대게로 유명한 고장이지만, 문어·새우·도다리·가자미·멍게·해삼 등 싱싱한 해산물이 사시사철 난다. 특히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이 오면 찰진 식감과 고소함을 자랑하는 대방어를 비롯해 고등어, 삼치, 전어가 지천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 대규모 수산물축제가 열리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2026 죽변항 수산물축제'를 앞둔 지난달 말 울진을 다녀왔다.
■금강산도 식후경, 6일부터 수산물축제
울진의 북쪽 관문인 죽변항은 동해안의 대표적인 어항이다. 남쪽의 후포항과 함께 대게 어획량이 많은 곳으로, 항구에 들어서면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수산물이 여행객을 맞는다. 죽변이라는 이름은 이 일대에 대나무가 많이 자생한 데서 유래했다. 지금도 죽변등대가 자리한 야트막한 언덕에는 대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죽변항에서는 오는 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2026 죽변항수산물축제'가 열린다. '가자, 죽변항! 먹자, 수산물!'을 주제로 마련되는 이번 축제에서는 방어와 오징어, 전어를 비롯해 청정 동해에서 잡아 올린 다양한 수산물을 만날 수 있다.
수산물과 건어물을 판매하는 장터가 들어서고 맨손 활어잡기, 수산물 즉석경매, 대방어 해체쇼 등도 진행된다. 여러 사람이 함께 물회를 만드는 퍼포먼스와 무료 시식 행사도 마련돼 동해안의 풍성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수산물을 직접 구입하거나 현장에서 맛보는 것은 물론, 어항의 활기찬 분위기를 경험하기에도 좋은 기회다.
죽변항의 매력은 축제 기간에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항구 주변에는 수산물을 취급하는 상점과 식당이 자리해 갓 잡은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싱싱한 회 한 접시를 즐기고 싶다면 항구를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다.
특히 죽변항 돌섬식당에서는 울진의 별미인 장치탕을 맛볼 수 있다. 장치는 동해 깊은 바다에서 잡히는 심해성 어류로, 길쭉한 몸집과 투박한 생김새가 다소 낯설지만 살은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다. 이밖에도 뱃사람들이 즐겨 찾는 물곰탕(곰치국)과 갓 잡은 대구로 맑게 끓여낸 생대구탕, 매콤한 양념에 볶아낸 문어볶음 등도 인기 메뉴다.
죽변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죽변등대가 있다. 1910년 11월 처음 불을 밝힌 등대로, 오랫동안 죽변항과 동해를 오가는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바닷가 언덕에 자리해 주변 풍광을 조망하기에도 좋다. 등대 주변으로 이어지는 대나무숲 산책로도 놓치기 아깝다. 푸른 대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면 항구의 분주함과는 또 다른 한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울진 북부, 불영사계곡에서 망양정까지
울진의 가을은 바다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륙으로 들어서면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진다. 울진읍에서 봉화 방면으로 향하는 국도 36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불영사계곡을 만난다.
근남면 행곡리에서 금강송면 하원리까지 약 15㎞ 이어지는 불영사계곡은 기암괴석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곳이다. 도로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계곡은 계절마다 다른 빛깔을 보여준다. 가을이면 산자락의 나무들이 조금씩 색을 바꾸면서 바위와 물이 빚어내는 풍경에 계절감을 더한다.
계곡의 절경을 감상하려면 전망대에 들러보자. 불영정과 선유정에서는 계곡을 내려다볼 수 있다. 특히 선유정은 계곡이 S자 모양으로 굽이치는 모습을 한눈에 담기 좋은 곳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곳곳에서 계곡의 비경을 만날 수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계곡을 따라가다 불영사에 이르면 고즈넉한 산사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불영사는 불영사계곡이 시작되는 지점에 자리한 절집으로, 부처 형상의 바위 그림자가 연못에 비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계곡의 자연경관과 함께 사찰의 역사와 전설을 살펴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다.
산과 계곡을 둘러봤다면 왕피천공원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왕피천과 동해가 만나는 하구에 자리한 공원은 울진의 자연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울진아쿠아리움과 울진곤충여행관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이 찾기에도 좋다. 계절에 따라 은어와 연어 등 하천 생태계의 변화도 관찰할 수 있다.
왕피천공원에서 망양정으로 향할 때는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다. 왕피천과 푸른 동해를 함께 조망할 수 있어 이동 자체가 하나의 관광 코스가 된다.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털 캐빈을 선택하면 발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다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왕피천을 건너면 망양정에 닿는다. 이 정자는 바닷가 언덕에 자리해 동해를 바라보기에 좋다. 조선 숙종은 이곳 경치가 관동팔경 가운데 으뜸이라며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을 내렸다고 전한다. 인근 성류굴도 울진 여행에서 빼놓기 어렵다. 약 2억5000만년 전에 형성된 석회암 동굴로, 아름다운 종유석과 석순이 만들어내는 풍경 때문에 '지하금강'이라고도 불린다.
■울진 남부, 월송정에서 평해사구까지
울진 남부에선 바다와 솔숲, 습지가 어우러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평해읍 일대의 월송정과 구산해수욕장, 평해사구습지생태공원은 서로 가까워 함께 둘러보기 좋다. 울진의 북부에서 산과 계곡을 중심으로 여행했다면 남부에서는 해안선을 따라 천천히 걷는 일정을 짜볼 만하다.
먼저 찾을 곳은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인 월송정이다. 고려시대 처음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는 누각으로, 울창한 소나무숲 너머로 동해가 펼쳐지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월송이라는 이름에는 달빛과 어울리는 솔숲(月松)이라는 뜻과 신선이 솔숲을 날아 넘는다(越松)는 뜻이 담겼다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월송정에서 가까운 구산해수욕장은 한적하게 바다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500m에 이르는 넓은 백사장과 깨끗한 바닷물이 특징이다. 해변 뒤편으로는 소나무숲이 이어져 바다를 바라보다가 숲길을 걷기에도 좋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장으로 이용되지만, 다른 계절에도 해변을 따라 산책하며 동해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해안선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평해사구습지생태공원이 나온다. 구산해수욕장과 월송정 일대의 해안선과 배후습지를 활용해 조성한 생태공원이다. 해안전망대와 조류관찰대, 사구전망대 등 다양한 관찰 시설이 탐방로로 연결돼 있어 자연을 살펴보며 걷기 좋다.
이곳의 매력은 바다와 습지가 한데 어우러진 풍경에 있다. 해안사구는 바람에 실려온 모래가 쌓여 형성된 지형으로, 평해 일대에는 해안사구의 발달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 남아 있다. 사구 주변으로는 해송림과 습지식물이 분포하고,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남대천 하구에는 다양한 생물이 살아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넓은 벌판처럼 보이지만 생태적 가치는 작지 않다. 과거 정밀조사에선 수달과 매, 삵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비롯해 다양한 조류와 어류, 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평해사구습지생태공원은 유명 관광지처럼 화려한 볼거리를 내세우는 곳은 아니다. 대신 바다와 모래밭, 솔숲과 습지가 차례로 이어지는 풍경 속에서 해안 생태계의 다채로운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다.
[email protected] 정순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