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학사원과 한국 학술원, 노벨상 가른 결정적 차이 [기고]
윤선희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지재&정보연구소 대표
매년 10월 노벨상 발표 계절이 오면, 한국 사회는 부러움과 조바심이 섞인 시선으로 열도를 바라보곤 한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만 2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의 저력 뒤에는 기초연구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평생 학문에 매진한 석학을 귀하게 여기는 '일본 학사원(日本学士院)'이라는 학술적 버팀목이 자리하고 있다.
반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 최고 학술 기관이라 불리는 '대한민국학술원'은 학술 생태계의 선순환을 이끄는 거목이 되기는커녕, 매년 국정감사 단골손님으로 올라 특권과 폐쇄성 논란의 중심에 서곤 한다. 기초과학 노벨상 배출의 성패를 가르는 차이는 단순한 연구비 규모가 아니라, 학술 기관을 운영하는 철학과 사회적 가치관에 있다.
대한민국학술원은 최고의 학문적 공로를 인정받은 석학들이 모인 집단임에도 사회적 시선은 냉담하기만 하다. 가장 큰 문제는 폐쇄적인 선출 방식과 특정 대학 쏠림 현상이다. 학술원 회원이 사실상 기존 회원들의 추천과 평가로 선출되는 구조를 띠고 있어 '끼리끼리 챙겨주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정 대학 출신 비율이 과반을 넘어서는 구조는 학계 전반의 다양성과 신뢰를 떨어뜨리는 주원인이다.
또한, 회원들에게 매월 수백만 원 상당의 종신 정액 수당이 지급되는 제도는 목적과 성과가 불분명해 단순 '시혜성 연금'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연구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신진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은 열악한 상황에서, 은퇴 후 석학들에게 실질적인 학술 성과나 사회적 기여 없이 세금을 투입하는 방식은 국민적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일본 학사원 역시 회원에게 종신 예우와 연금을 제공한다. 하지만 일본 학사원이 존경받는 이유는 권위에 걸맞은 '실질적 학술 가치'를 끊임없이 창출해 내기 때문이다. 유카와 히데키, 야마나카 신야 등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다수가 학사원 회원이듯, 회원이 되는 것 자체가 엄격한 평가를 거친 세계적 연구 성과에 대한 사회적 공인이다. 일본 학사원 회원들은 연금을 바탕으로 은퇴 후에도 저술 활동, 국가 학술 자문, 국제 학술 교류에 적극적으로 임하며 학문적 노하우를 후학들에게 전수하는 학풍을 유지한다. 즉, 단순한 복지 수혜자가 아니라 국가 학문의 중심축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노벨상은 뛰어난 개인의 천재성만으로 얻어지는 결실이 아니다. 학자의 도전과 실패를 기다려줄 줄 아는 사회적 인내심, 그리고 평생을 학문에 바친 연구자를 귀하게 여기면서도 투명하게 운영되는 명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낸 집대성이다.
대한민국학술원이 학계의 신뢰를 회복하고 한국 기초과학의 버팀목이 되기 위해서는 과감한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회원 선출 프로세스에 제3자 검증 및 외부 평가를 도입해 투명성을 확보하고, 석학들이 보유한 지식과 경험이 국가 정책 자문과 신진 연구자 양성 등으로 환원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특권의 타성에 젖은 학술 기관을 그대로 둔 채 노벨상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라도 대한민국학술원은 '그들만의 리그'라는 오명을 벗고, 연구자가 평생 안심하고 학문의 깊이를 더해갈 수 있는 진짜 토양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할 때다. 윤선희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지재&정보연구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