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대미 투자 6조달러는 역마셜플랜"…세계 석학들, 韓 성장 해법 제시

임수빈 기자
파이낸셜뉴스

美 제조업 재건 비용 교역국에 전가
포젠·이창용 "AI 협력·구조개혁 필요"
고율 관세에도 미중 교역 우회 지속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로고. 한경협 제공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로고. 한경협 제공

[파이낸셜뉴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협상을 통해 주요 교역국으로부터 확보한 대규모 대미 투자 약속이 미국 제조업 재건 비용을 교역 상대국에 전가하는 '역(逆)마셜플랜'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고율 관세에도 미국과 중국의 교역이 제3국을 통해 이어지는 가운데, 글로벌 통상질서 재편과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제기됐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27일 서울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와 공동으로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분열의 시대, 새로운 성장 전략: 무역, 산업, 일자리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국내외 석학들이 모여 관세 갈등과 공급망 재편, 인공지능(AI) 확산 속 한국경제의 성장 전략을 모색했다.

류진 한경협 회장은 개회사에서 "분열과 갈등을 넘어설 힘은 결국 성장에서 나온다"며 "기업의 투자와 혁신이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열고, 진취적인 정책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조연설과 좌담에서는 분열 속에서도 AI가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논의가 이어졌다. 기조연설에 나선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 총재는 AI와 고용의 관계에 대해 "AI로 인한 일자리 감소는 아직 실증적 증거가 부족하다"며 "지금 중요한 것은 AI가 일자리를 얼마나 줄일지가 아니라, AI를 어떻게 활용해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근로 환경을 개선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일"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신흥국이나 개발도상국의 경우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는 자체 거대 모델을 개발하기보다는 농업·교육·보건 현장에 맞춘 값싸고 단순한 '스몰 AI'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원장(한경협 CRO)이 좌장을 맡은 좌담에서 아담 포젠 PIIE 소장은 AI 기술이 미·중 진영으로 갈라지는 상황에서 한국 같은 개방형 경제는 협력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용 전(前) 한국은행 총재(PIIE 객원연구위원)는 저출생·고령화로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는 한국은 AI로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하며, 이를 위해 구조개혁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철 원장은 '스몰 AI'가 AI 허브를 지향하는 한국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기술적 신뢰성과 중국의 가격 경쟁력을 두루 갖춘 AI 솔루션을 개발하고, 개방적이고 유연한 기술·규범 협력을 통해 세계 각국의 AI 활용과 디지털 전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후 주요 세션에서는 관세와 대미 투자 압박 등 미국의 통상정책이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마커스 놀랜드 PIIE 부소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협상의 대가로 9개 경제권에서 받아낸 약 6조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을 '역(逆)마셜플랜(Marshall Plan in reverse)'이라고 표현했다. 2차 대전 후 미국이 유럽 재건에 자금을 댔다면, 이번에는 파트너국들이 미국의 제조업 재건에 자금을 대는 구조라는 것이다.

놀랜드 부소장은 "이처럼 거액을 해외로 보내는 나라는 투자액에 더해 통화가치 하락으로 실질 소득이 줄어드는 추가 부담까지 진다"고 지적했다. 분석에 따르면 일본·한국·대만은 성장률이 소폭 둔화하고, 미국은 성장이 다소 빨라지지만 달러 강세로 무역적자는 오히려 커진다. 다만 한국은 투자 기간이 10년으로 일본(4년)보다 길어 충격이 상대적으로 작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메리 러블리 PIIE 선임연구위원은 '후퇴가 아닌 우회(Rerouting Not Retreat)'를 주제로 "미국의 관세 장벽은 미·중 디커플링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관세 영향으로 미국 수입에서 중국 직접 수입 비중은 2017년 22%에서 2025년 9%로 줄었지만, 멕시코·베트남 등 '연결국'을 거쳐 들어오는 중국산 부가가치는 같은 기간 16%에서 25%로 크게 늘었다. 그는 무역 제한 조치 아래서도 글로벌 교역은 AI 관련 품목을 중심으로 늘고 있는 만큼, 한국의 지속적인 교역 다변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email protected] 임수빈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