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복지국가 프랑스의 허상
과잉규제와 기업하기 힘든 환경
외국인 직접투자, 싱가포르의 15%
올 성장률 0.4%…과잉복지로 거덜
프랑스 위기는 우리에게 반면교사
재정악화·긴축 악순환에 빠질건가
구조개혁, 성장·복지 균형 이룰건가
프랑스 청년들의 분노와 절망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언론이 전하는 '불타는 프랑스'의 모습은 유럽의 중심국가가 직면한 위기를 상징한다. 프랑스 위기는 복지국가 프랑스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프랑스 판타지의 종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17년 취임하며 내건 '변화와 희망'의 약속은 사실상 좌초했다. 퇴임을 앞둔 마크롱의 지지율은 15%선에 불과하다. 39세에 대통령에 오른 그는 경제개혁으로 성장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노란조끼 운동, 노동법과 연금개혁을 둘러싼 갈등, 총선 실패로 개혁동력을 잃었다. 마크롱 정부는 친시장·친기업 정책과 세제개편을 추진했지만 강력한 노조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넘어서지 못했다.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겠다는 개혁은 지지부진한 반면 재정적자는 누적됐다. 개혁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비용을 감수하려는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 것이 프랑스 정치의 딜레마다.
프랑스 위기의 근본에는 수십 년간 유지해 온 고복지 체계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경제성장 사이의 불균형이 있다. 저성장·고령화 시대에 부응하는 구조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노동법개혁, 연금개혁이 노동계와 좌파 진영의 반대로 좌절되고, 법정 은퇴연령을 상향하는 개혁에는 우파 진영도 협력하지 않았다.
과잉복지 국가 추구로 국가재정이 사실상 거덜 났다. 국가부채비율이 120%로 상승했다. 2009년 재정위기를 겪은 이탈리아와 유사한 수준이다. 2020년부터 부채비율이 100%를 상회하고 있다. 2020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부채비율이 하락한 스페인, 그리스 등과 대조된다. 과도한 복지를 지원하기 위한 관용적 재정운용으로 1975년 이래 만성적인 재정적자 국가가 되었다. 조세부담률도 44%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은퇴 전 소득의 70%를 보장하는 연금제도로 재량적 재정운용의 여지가 거의 없다. 내년 이자부담액이 14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방비와 교육비보다 많은 기형적인 구조다. 재정적자 비율도 지난해 5.1%로 유럽연합(EU) 평균인 3.1%보다 높다. 공공지출 비율도 57%에 달해 EU 평균 49.8%보다 훨씬 높다.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도 4.8%로 200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가부채와 재정적자 누적으로 '적자 민주주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은 프랑스를 재정적으로 지속불가능한 나라라고 비판했다.
저성장이 위기의 근본 원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0.4%다. 2022년 2.8%에서 2023년 1.6%, 2024년 1.1%로 하락했다. 과잉규제와 기업하기 힘든 환경으로 마크롱의 친시장 정책이 한계에 봉착했다. 세계은행의 기업하기 쉬운 환경지표에서 32위를 기록, 튀르키예와 같은 순위다.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싱가포르의 15% 수준이다. 세계 100대 기업에 미국이 62개, 중국이 11개가 포함된 반면 프랑스는 4개에 그쳤다. 매년 1만5000명의 공대와 경영대 졸업생이 해외로 취업한다. 프랑스 기업의 임금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청년실업률이 20%선으로 독일의 3배다. 고용주 부담 사회보장 비율이 총급여의 45%를 차지해 기업의 채용을 크게 위축시킨다. '적자 자본주의'의 민낯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프랑스의 중도우파 정당과 중도좌파 정당이 빈곤층, 근로자, 젊은층의 분노와 고충에 대해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한 것이 프랑스 사태의 배경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는 이를 노동계층 자유주의의 실패로 본다. 프랑스 정치체제가 근로자나 젊은층에게 공유된 번영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 사회 엘리트 계층과 보통 시민 사이에 경제적·문화적·사회적 격차가 심화되어 비엘리트 계층의 소외의식과 배제 감정을 극대화했다. 시위와 방화, 약탈은 이들의 절망감이 극적으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 퓨(PEW)에 따르면 69%의 프랑스인이 현 상황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은 "위대하지 않으면 프랑스가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위대함'을 근본 가치로 내세운 프랑스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복지제도를 양산한 결과다. 프랑스병은 우리에게 반면교사다. 구조개혁으로 성장과 복지의 균형을 회복할 것인가, 아니면 재정악화와 긴축의 악순환에 빠질 것인가. 프랑스 국민의 선택에 프랑스와 유럽의 명운이 걸렸다.
박종구 한성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