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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싱가포르가 '해사 허브' 된 비결

파이낸셜뉴스
임기택 유엔국제해사기구 명예사무총장
임기택 유엔국제해사기구 명예사무총장

지난 13일부터 사흘간 열린 싱가포르국제벙커링컨퍼런스·전시회(SIBCON 2026)에 세계 각국의 에너지 트레이더, 정유사, 선사, 조선소, 금융기관 관계자 2000명 이상이 모였다. 연중 국제 해사 행사가 이어지는 이곳에서는 세계 해사의 자본과 인재, 정보가 모여드는 흡인력을 실감할 수 있다. 명실상부한 '해사 블랙홀'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지금 중대한 정책 기로에 서 있다. 지난해 채택이 미뤄진 IMO 넷제로 프레임워크는 오는 12월 다시 논의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를 '글로벌 탄소세'로 규정하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규제의 향방이 불투명한 가운데, 대체연료 전환의 해법과 시장 동향을 파악하려는 업계의 관심이 싱가포르로 쏠렸다.

전통적으로 세계 해사 비즈니스의 심장부는 IMO 본부와 해상보험·법률 서비스가 자리한 런던이었다. 그러나 무게중심이 점차 아시아로 옮겨가고 있다. 발틱거래소가 2016년 싱가포르거래소에 인수된 것은 상징적인 사례다. 싱가포르 해사 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6% 이상을 차지하고 약 14만개 일자리를 창출한다. 200여개 국제 해운그룹을 비롯한 5000여개 해사기업이 해운·항만과 금융·보험·법률·중개 서비스로 이어진 생태계를 이룬다.

선사는 운항과 연료조달을 논의하고, 금융기관은 투자 기회를 찾으며, 법률·보험 전문가는 거래에 필요한 신뢰를 뒷받침한다. 다른 분야의 전문성이 가까이 모여 있어 의사결정과 실행이 빨라진다. 필요한 서비스를 한곳에서 구할 수 있다는 편의가 기업을 끌어들이고, 축적된 경험과 정보는 다시 이곳의 힘이 된다. 이런 생태계가 싱가포르에 뿌리내린 비결은 무엇인가.

첫째는 영어를 통한 자유로운 소통과 글로벌 문화를 수용하는 개방성이다. 리콴유 초대 총리는 영어를 공통 업무언어로 삼는 이중언어 정책으로 세계 시장과 연결되는 기반을 마련했다. 투명한 법률체계에 해사기업 세제 인센티브(MSI) 같은 지원이 더해져 기업과 인재가 모이고, 다시 투자와 정보를 끌어들이는 선순환이 형성됐다. 영어 소통은 단순한 외국어 능력이 아니라 세계의 기업인이 협상하고 계약하며 신뢰를 쌓는 비즈니스 기반이다.

둘째는 정부의 효율성과 민관의 긴밀한 협력이다. 교통부와 해운항만청은 규제기관이면서도 산업 발전을 함께 고민하는 비즈니스 파트너다. SIBCON도 정부가 판을 깔고 업계가 의제를 짜는 협력의 장이다. 무랄리 필라이 교통부 선임국무장관은 개막식에서 "정부의 역할은 연료 종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업계에 믿을 만한 옵션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 연료 기준은 업계와 함께 만들고 현장에서 검증하며, 공개 의견수렴을 거쳐 다듬는다. 국제규범이 불확실할 때 정부가 업계와 실행여건을 조성하면 시장은 움직일 여지를 얻는다.

싱가포르의 흡인력은 지리적 이점과 항만 인프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영어로 자유롭게 소통하는 개방적 환경과 정부·업계가 함께 시장을 준비하는 실행력이 해사 생태계를 키웠고, 그 생태계가 다시 세계의 기업과 인재를 끌어당긴다. 하드웨어를 넘어 이런 소프트웨어를 갖추는 일은 글로벌 해사 산업의 허브를 꿈꾸는 우리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임기택 유엔국제해사기구 명예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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